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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호, 통권 8호 2019 봄호, Vol.8

일·생활 균형 및 성평등 현안과 유연근로제의 한계

Why Flexible Working Alone Will Not Fix Pressing Issues of Work-Life Balance and Gender Equality

초록

한국 정부를 포함한 많은 정부가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을 강화하고 노동시장의 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연근로제(flexible working)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유연근로제는 제도가 도입될 곳의 근로 문화와 성규범 환경에 따라 오히려 전통적인 성역할을 굳히거나 일과 가족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자료들을 인용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근로시간을 축소하고 할당제 부성휴가(ear-marked paternity leave)와 같은 가족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유연근로제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왜 필수적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1. 들어가며

한국에서 일·생활 균형은 속히 해결해야 할 주요한 문제이다. 국제 사회조사 프로그램(ISSP: 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me)이 2012년 시행한 ‘가족과 변화하는 성역할’에 관한 조사에서 한국인 조사 대상자의 25%가 일주일에 여러 번, 일에 너무 지쳐 퇴근 후 집안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응답했다. 또 16%는 일주일에 여러 번, 긴 근로시간 때문에 가족의 책임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생활 균형과 성평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인정받는 덴마크에서는 위와 같이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한국의 절반 정도인 각각 16%, 7%였다.

이뿐 아니라 한국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보다 많은 여성이 대학교육을 받게 되면서(대학교육을 받는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많다) 노동시장에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여성의 야망이 커진 데 반해 성역할에 대한 전통적 시각이 여전히 팽배해 아직 인구의 대부분은 여성이 아동 양육에 주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한국 남성이 집안일에 할애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1분으로 조사 대상 국가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일본 남성이 꼴찌였다). 반면에 여성이 집안일에 할애한 시간은 하루 평균 138분으로 남성의 7배 수준에 가까웠다. 심지어 이 결과는 여성이 대부분 전담하는 아동과 노인 돌봄에 할애하는 시간을 고려하기 전의 결과였다. 집안일과 돌봄에 할애하는 시간의 남녀 격차 또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성역할 태도 또한 매우 보수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ISSP 조사에서 한국인 조사 대상자의 70%가량이 엄마가 일을 하면 학령 전 아동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여성이 일과 돌봄을 병행하기를 원했으며, 조사 대상자의 70%가량이 남성과 여성 모두 가구소득에 기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를 덴마크와 비교해 보면 덴마크에서도 조사 대상자의 80%가 남녀 모두 가구소득에 기여해야 한다고 대답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가 일을 하면 학령 전 아동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 응답자는 22%에 그쳐 한국 응답자의 3분의 1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이 OECD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갖게 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으며, 유연근로제는 이 중에 포함되어 있다. 유연근로제를 추진하기 위해 시간제 근로를 확대할 뿐 아니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소위 시차출퇴근(기존의 소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출퇴근시간을 조정하는 제도), 선택근무제(1개월 이내의 정산 기간을 평균하여 1주 평균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1주 또는 1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제도), 탄력근무제(선택근무제와 비슷하나 정산 기간이 1개월이 아닌 3개월 등 보다 장시간 범위), 재택·원격근무(사무실이 아닌 집이나 다른 장소에서 근무하는 제도)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육아수당 등 가족정책을 확장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유연근로제(여기서는 시차출퇴근, 선택·탄력근로제와 재택·원격근무)에 초점을 맞춰 다음 질문들에 답하고자 한다. 유연근로제가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을 높이고 노동시장의 성평등을 촉진할 수 있는가? 만일 할 수 없다면 어떤 변화들이 필요한가? 이 글의 핵심은 단순한 유연근로제 도입만으로는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과 성평등을 둘러싼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를 영국(Chung & Van der Horst, 2018b)을 비롯한 유럽의 경험(Chung & Van der Lippe, 2018)을 근거로 보여 주고자 한다. 유연근로제가 일·생활 균형이나 성평등을 이루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국가 정책과 문화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유연근로제에 관한 최근 연구 결과들의 핵심 사항들을 정리하기 전, 먼저 최신 자료들을 토대로 유럽에서 유연근로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와 유연근로제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유럽의 유연근로제 정의와 동향

유연근로제란 근로자가 근무하는 시간과 장소를 조절할 수 있는 제도이다(Kelly et al., 2014; Chung & Van der Lippe, 2018).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유연근무제(flexible schedule)는 근로자가 근무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조절하는 것이다. 유연근무제는 우리나라의 시차출퇴근제도·선택근무제와 비슷한 제도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근로자의 욕구에 따라 보다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며, 하루나 일주일에 일하는 총근로시간을 조절할 수도 있다(경우에 따라서는 초과근무를 쌓아 휴가를 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탄력근로제도 이에 포함된다.

이와 다른 ‘자율근로제(working time autonomy)’는 우리나라의 재량근무제와 같이 근무시간과 근로시간1)을 조절할 수 있는 근로자의 자유를 확대한다. 자율근로제와 유연근무제의 가장 큰 차이는 유연근무제에는 핵심 근무시간(예: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을 지켜야 한다든지, 하루나 일주일 동안의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다든지(예: 주당 37시간) 하는 일정한 제약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자율근로제에는 이러한 제약 없이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할당된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밖에 없다. 원격근무(telework)는 재택근무와 같이 근로자가 집과 같은 직장 밖 장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밖에도 유연근로제에서 근로자는 총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이는 주로 가족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근로자가 (잠시나마)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에는 근로시간 단축의 일반 유형으로 시간제 근로(주당 3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것), 학기제 근로(근로자가 학기에만 일을 하는 것으로 연간 38주), 일자리 공유(둘 이상의 근로자가 하나의 정규직 일자리를 공유하는 것), 임시 근로시간 단축(근로자가 일정 기간 임시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근로자의 근로시간과 근무지 조정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앞으로 유연근로제라 할 때, 시차출퇴근·선택·탄력근로제뿐만 아니라 원격·재택근무를 포함하는 제도들을 일컫는 것이다. 필요시 보다 구체적으로 이 중 어떠한 제도를 말하는지 설명하겠다.

[그림 1]은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28개 회원국 피고용인(dependent employed workers)의 4분의 1 이상이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과 약 20%는 유연근무제, 약 6%는 자율근로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같이 가족친화적인 국가로 잘 알려져 있고, 가장 관대한 가족정책을 펴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 근무시간 조절이 자유로운 국가들이라는 분명한 패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기업 수준에서 도입됨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가족친화적 정책을 펴는 동유럽과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유연근로제 사용도 제한적이다. 원격근무의 유형을 조사해 봐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즉 지난 12개월 동안 근로자가 정기적으로 집이나 기타 공공장소(카페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나는 곳은 북유럽 국가들이다. 실제로 과거 연구들을 살펴보면 관대한 가족정책을 펴는 국가들에서 근로자가 기업의 가족친화적 유연근로제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Chung, 2018a; Chung, 2017; den Dulk et al., 2013).

앞으로 유럽에서 유연근로제의 활용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올해 유럽의회에서 유럽의 일·생활 균형을 도모하는 새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uri=CELEX%3A52017PC0253 참조). 새 법안은 자녀를 둔 근로자와 돌봄 책임을 지고 있는 근로자에게 유연근로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이는 유럽 전역 근로자들의 유연근로 권리를 강화할 것이다.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에는 새 법안과 유사한 법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어 대부분의 변화는 현재 이러한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남, 동부-유럽 국가들에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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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2015년 유럽 28개국-근무시간 조절 가능한 피고용인의 비율

gssr-8-49-f001.tif

자료: EWC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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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15년 유럽 28개국–지난 12개월간 월중 여러 번 직장이 아닌 집이나 기타 공공장소에서 일한 피고용인의 비율

gssr-8-49-f002.tif

자료: EWCS 2015.

3. 유연근로제와 일·생활 균형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유연근로제를 추진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유연근로제가 돌봄 책임을 지는 부모 및 근로자를 위주로 일·생활 균형을 높이고, 특히 돌봄 책임을 지는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평등을 촉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근무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되면 근무 일정과 가족 일정을 맞출 수 있어 일·생활 균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령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으면 부모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자녀의 하교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다. 특히 부부가 2인1조로 자녀를 돌보는 경우 한 부모는 일을 일찍 시작해 일찍 마치고 다른 부모는 늦게 시작해 늦게 마치면서 양육 부담을 나눌 수 있으며, 아이와 부모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근로자는 유급 노동과 육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가령 집에서 일하면서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통근 시간이 긴 근로자는 그 시간을 아껴 일이나 육아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연구들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 유연근로제가 반드시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을 높여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오히려 어떤 때는 직장 일과 가족 일 간의 갈등을 더 고조시킨다(Allen et al., 2013; Michel et al., 2011 참조).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첫째, 유연근로제는 업무 시간과 비업무·가족 시간의 뚜렷한 구분을 없애는데,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유연근로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회사 일과 다른 일들을 동시에 함께 하게 되는, 즉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multi tasking)(Delanoeije et al., 2019)과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일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게 되는 경계의 모호성(Schieman & Young, 2010; Lott, 2018)을 증가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유연근로를 도입할 때 근로자의 업무 강도가 높아지거나(Kelliher & Anderson, 2010) (비급여) 초과 근무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Lott & Chung, 2016; Glass & Noonan, 2016; Chung & Van der Horst, 2018a)는 근거가 있다. 근로자가 여가를 늘리기보다 업무 강도와 시간을 더 높이는 이유는 고용 불안이 증가하고 근로자의 협상력이 떨어지며 평범한 근로 패턴에서 벗어난, 예를 들어 유연근무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Chung, 2018b). 이 글에서 이러한 업무 강화와 경계 모호가 이루어지는 이유를 더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므로 여가보다 업무시간과 강도가 늘어나는 것을 볼 때, 유연근로제가 왜 일·생활 균형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유연근로제와 성평등

유연근로제는 한편으로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여성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정책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진행된 선행연구들을 보면 유연근로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은 출산 후에도 근로시간을 유지할 수 있으며, 보다 고위 직급의 일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근거를 볼 수 있다. 가령 영국의 가구패널조사 데이터를 통해 본 여성들의 출산 후 근로 패턴 변화를 살펴본 연구(Chung & Van der Horst, 2018b)에서 연구 대상 여성들의 약 절반가량(53%)이 출산 후 근로시간을 하루 기준 반나절 이상(주 4시간 이상)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율출퇴근 등 유연근무를 할 수 있는 여성들 대부분은 근로시간을 유지했다(77%). 이뿐만 아니라 유연근로를 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첫 아이를 출산한 이후 일을 그만두는 경향이 유연근무를 할 수 없는 여성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러한 점에서 유연근로제는 자녀를 둔 여성들이 일을 계속하고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성평등을 강화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독일, 미국, 유럽 내 일부 국가들에서 유사한 패턴을 발견했으며, 유연 근로가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Fuller & Hirsh, 2018; Van der Lippe et al., 2018).

그러나 이와 반대로 유연근로제가 남녀 간의 임금 차별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증거 역시 있다(Chung & van der Lippe, 2018). 남성은 업무 성과를 강화할 목적으로 유연근로제를 사용하며, 고용주 역시 남성이 유연근무를 할 때 업무 성과에 집중할 것이라고 기대한다(Brescoll et al., 2013). 사실 영국과 독일의 데이터를 보면 유연근로제를 사용하는 근로자 중 여성보다 남성이 업무 강도를 높이고, 근로시간을 더 늘릴 가능성이 높다(Chung & van der Horst, 2016). 이와 동시에 남성은 연봉 프리미엄을 통해 보상을 받게 되지만, 여성은 이런 보상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Lott & Chung, 2016).

이뿐만 아니라 유연근로제는 가족 내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을 굳힐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여성의 경우 재택근무를 할 때 주위에서 육아 등 돌봄이나 집안일을 더 많이 할 것이라고 기대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Hilbrecht et al., 2008; Kurowska, 2018; Kim, 2018; Sullivan & Lewis, 2001). Kim(2018)은 미국 데이터를 이용해 유연근로제가 부모들이 자녀와 보내는 시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였다.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들이 재택근무를 할 때 놀이와 교육 활동 등을 포함해 자녀와의 질적인 시간을 늘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남성들이 재택근무를 할 때는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에 대해 Sullivan과 Lewis(2001)는 여성들이 주로 일과 가족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유연근로를 선택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여성이 유연근로를 하게 되면 돌봄과 집안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경우는 다르다. 남성의 근로시간은 보다 신성하며 보호받아야 할 영역으로 여겨진다. 더 나아가 Hilbrecht 외(2008, p. 472)는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수용하여 일하는 시간과 유무급 업무 강도를 높이라는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유급 업무와 무급인 집안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자신들의 일정을 조정한다”며 유연근로제가 여성 착취를 가능하게 했다고까지 말한다. 위의 연구들은 왜 유연근로제가 한편으론 자녀를 둔 여성의 스트레스를 줄이지 못하면서(Chandola et al., 2019), 다른 한편으론 남성에겐 보상하는 소득 프리미엄을 여성에겐 보상하지 않는지를 설명한다(Lott & Chung, 2016).

5. 나가며

유연근로제가 반드시 성평등에 나쁜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과 폴란드를 비교한 연구에서 Kurowska(2018)는 스웨덴같이 성평등 문화가 진보적이며 가족정책이 보다 관대한 국가에서는 유연근로제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유사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스웨덴과 같이 성역할 태도가 진보적인 곳에서는 유연근로제로 일을 할 때 남녀 모두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유연근로제가 남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내는 것은 유연근로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성역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달린 것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유연근로제가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집안일과 자녀 양육에 대해 보다 전통적인 노동 분업이 여전하고, 태도 역시 여성이 집안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한국에서 유연근로제가 시행되면 여성들은 여전히 보다 많은 집안일과 돌봄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 유연근로제 도입 자체로는 남녀 간 가사 업무의 불평등한 분배와 역학관계를 바꾸지 못한다. 물론 이는 여성이 유연근로를 할 수 있을 때의 말이다. 유럽의 자료를 활용해 본 연구에 의하면 시간제 근로의 경우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고, 여성이 많은 직장에서 많이 운영되고 있다고 나타났다. 그러나, 선택·재량·재택근무의 경우 여성근로자가 더 많은 직장에서 자주 찾아볼 수 없다고 나타났다(Chung, 2018c). 또 이런 시스템이 갖춰졌다 하더라도 근로자가 가족 돌봄 책임 때문에 유연근로를 할 때 다른 직장 동료들이나 상사 등에 의해 자신의 생산력이나 책임감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힐 우려로 인해 유연근로제를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Chung, 2018b). Williams 외(2018)는 오래 일하고 일을 최우선시하는 ‘이상적 근로자 문화(ideal worker culture)’야말로 유연한 근로를 하는 사람들이 부정적 낙인이 찍히고 경력 개발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주된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장시간 근로를 하는 나라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장시간 문화가 팽배한 만큼 유연근로를 할 수 있게 되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특히 돌봄이나 가사 업무를 위해 유연근로를 선택하는 근로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유연근로제가 활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경기 변동에 따른 사업 목적상 활용되거나 최근 도입된 장시간 근로 방지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 근로자가 일·가족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활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Lee & Kim, 2010). 다시 말해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유연근로제는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과 성평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보다 많이 활용되고 있는 시차출퇴근, 선택·탄력근로제뿐만 아니라 원격·재택근로제를 도입하고 활용하기 전에 어떤 변화들이 있어야 할까? 첫째, 무엇보다 모든 근로자와 직장의 실제적인 근로시간 감축이 중요하다. 지난해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중요한 첫걸음이지만 근로자가 항상 일만 하며, 일 이외 다른 책임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근로 문화를 바꾸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 장시간 근로가–여기서는 52시간이 아닌 이보다 훨씬 적은 48시간 이상 등-실제로 업무 성과(Pencavel, 2014), 인지기능(Kajitani et al., 2016), 정신건강(Dinh et al., 2017)에 좋지 않다는 근거는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장시간 근로 문화는 남녀 임금 격차가 지속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Goldin, 2014; Cha & Weeden, 2014). 장시간 근로 문화는 남성들이 원하는 만큼 집안일을 돕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Cha, 2010). 남녀 모두의 근로시간을 줄여야만 유연근로제가 남녀 모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돌봄이 누구의 역할인가에 관한 성역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자녀 양육을 함께 하는 것이 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아버지와 같이 보내는 시간은, 특히 아버지와의 놀이나 책 읽기 등 보다 질이 높은 시간은 자녀의 인지기능,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자녀의 정서안정과 불량 행동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Allen & Daly, 2007; Kroll et al., 2016; Cano et al., 2018). 아버지가 자녀 양육과 돌봄을 함께 나누는 것이 부부간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고 이혼율을 낮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Norman et al., 2018; Schober, 2012). 또한 유럽의 경험을 보자면 양육 초기에(영아 시기에) 아버지를 개입시키는 것이 자녀가 커 가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양육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Norman et al., 2014; Nepomnyaschy & Waldfogel, 2007). 따라서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국가들처럼 자녀가 태어난 후 첫 1년 안에 대체율이 높은, 아버지들에게 지급되고 어머니에게 이전될 수 없는 할당 부성휴가를 지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유연근로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하려면 관대한 부성휴가 정책과 함께 도입해 유연근로제가 전통적 성역할을 굳히는 매개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 특히 언제 어디서 일할 것인지에 대한 근로자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은 성평등과 근로자 복지를 강화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연근로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토양이 필요 없는 나무도 아니다. 유연근로제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아 개인, 가족, 사회 전체에 미칠 부작용을 막으면서 정책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유연근로제가 도입되어야 할 정책 환경을 주의하여 살펴보고 보다 거시적인 변화를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야 할 것이다.

Acknowledgement

번역: 라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원

1)

역자주-이 글에서 근로시간의 시간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를 의미한다. 근무시간의 시간은 ‘시간의 어느 한 시점’을 의미하도록 번역했다. 즉 근무시간은 근무 일정을 의미한다. ‘자율근로제’는 근로시간과 근무시간 모두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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