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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호, 통권 24호 2023 봄호, Vol.24

미국 연방 병가제도의 발달 과정과 전망

Development Trajectory and Prospects of the U.S. Federal Medical Leave Policy

Abstract

The US is one of the few welfare states that do not have a national paid sick leave scheme. However, since 2010, at least 10 state and municipal governments have enacted or drafted their own paid sick leave schemes, and, in many states, different types of paid sick leave were made available depending on the employer. Recently, discussions on the implementation of a paid sick leave policy at the federal level have been active in US political circles led by the Democratic Party. This article investigates the development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the US federal sick leave system and examines the prospects of implementing paid sick leave in the future. In addition, this study derives policy implications from the US case that are relevant to Korea as it gears up to implement a national sickness benefit scheme.

초록

미국은 국가 차원의 유급병가정책이 없는 극소수의 복지국가 중 하나이다. 다만 2010년 이후 10여 개의 주정부 및 지방정부에서 독자적인 유급병가정책을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으며, 개별 사업장에 따라 다양한 유급병가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미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주도하에 연방 차원의 유급병가정책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 연방 차원의 병가제도 발달 과정과 그 특징을 살펴보고 향후 유급병가 도입의 가능성을 예단해 본다. 아울러 이러한 미국의 경험이 상병수당제도의 도입을 준비 중인 한국에 주는 정책적 함의를 살펴본다.

1. 들어가며

복지자본주의 유형론(typology of welfare capitalism)의 고전인 에스핑-엔더슨의 분류에 따르면 미국 복지국가는 전형적인 자유주의형 복지체제(liberal welfare regime)이다. 자유주의형 복지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의 정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Esping-Andersen, 1998). 이는 개별 사회구성원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동을 상품화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대체하거나 보상할 수 있는 일련의 사회적 기제(social mechanism)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유주의형 복지국가에서는 복지 제공자로서 시장(market)의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사적 복지(private welfare)가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미국 복지국가에서 이와 같은 자유주의형 복지체제의 특징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지점이 바로 건강보험제도이다(Hacker, 2005).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은 20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가 차원의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다. 이전까지 미국은 국가 건강보험이 부재한 유일한 복지국가였다.1) 미국에서는 2010년 오바마케어(정식 명칭은 Affordable Care Act임)가 시행되기 전까지 건강보험이라는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적 복지제도가 시장을 통해서만 제공되었다. 이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고용을 통한 부가혜택(employment-based fringe benefit)으로 건강보험을 획득하거나 아니면 사적 보험회사와의 개별적 계약을 통해 건강보험을 구매해야만 했다. 이러한 체제 안에서는 만약 노동의 상품화가 실패할 경우, 즉 실업과 그로 인한 소득 중단이 발생할 경우 당장 건강보험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모두 차단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케어는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미국 복지국가의 성격을 전환하는 데에 일조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김태근, 2017).

건강보험제도와 함께 미국 복지국가에서 낮은 수준의 탈상품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영역이 있는데 바로 유급병가(paid medical leave)제도이다. 건강보험제도의 본질이 의료상 문제 발생시 그 ‘치료 비용(medical cost)’을 보전해 주는 것이라면 유급병가제도는 의료 문제로 인한 노동 중단 시 그 ‘임금(wage)’을 보전해 주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고한수, 2021). 따라서 건강보험제도와 유급병가제도는 ‘의료상 문제’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별개의 제도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유급병가는 의료상 문제로 인해 파생되는 휴직(work leave)과 임금 보전 등 노동조건(labor standards)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복지정책이자 동시에 노동정책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건강보험을 국가의 기본적 복지정책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 단위의 유급병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국가 차원의 유급병가정책이 없는 극소수의 복지국가 중 하나이다. 오바마케어 이전 건강보험제도와 유사하게 미국에서 유급병가는 사적 영역(개별 사업장 또는 사적 보험회사)에서 주도적으로 제공해 오고 있다. 다만 2010년 이후 10여 개의 주정부 및 지방정부에서 독자적인 유급병가정책을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최근 미 중앙 정치권에서는 연방 차원의 유급병가정책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 연방 차원의 병가제도 발달 과정과 그 특징을 살펴보고 향후 유급병가 도입의 가능성을 예단해 본다. 아울러 상병수당제도의 도입을 준비 중인 한국에 주는 정책적 함의를 살펴본다.

2. 병가제도의 정책적 분석 틀

미국 병가정책과 관련된 용어들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먼저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병가제도의 정책적 분석 틀을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2)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은 ‘휴직(leave of absence)’이다. 휴직은 ‘일시적으로(temporarily)’ 노동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3)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일시적이라는 것, 즉 복귀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휴직은 그 사유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되는데 육아와 관련된 육아휴직(parental leave), 가족의 장례와 관련된 장례휴직(bereavement leave), 노동자의 휴식과 관련된 휴가(vacation leave) 등이다. 그중 특별히 건강문제(medical condition)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휴직을 병가(medical leave)라고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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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미국 휴직제도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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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저자가 직접 작성함.

한편 미국에서 병가라는 단어는 다시 그 사용 기간에 따라 둘로 나뉘는데 보통 며칠 정도의 짧은 병가를 나타내는 용어로 ‘sick leave’라는 별도의 단어를 사용하고, 통상 ‘medical leave’는 몇 주 이상의 중장기 병가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4)(U.S. Department of Labor, 2016).그리고 병가는 다시 임금의 보전 유무에 따라 무급병가(unpaid medical leave)와 유급병가(paid medical leave)로 나뉜다. 대부분의 개별 사업장에서 단기병가인 sick leave의 경우 유급으로 운영되는 데에 반해 병가(medical leave)의 경우 사업장에 따라 무급 또는 유급으로 운영되며 또 유급이라 하더라도 보전되는 임금의 수준이 상이하다. 미국은 여기에 더하여 매우 독특한 병가구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가족의료휴가(family medical leave)’라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병가(medical leave)병가(medical leave)는 노동자 본인의 건강문제만을 휴가의 사유로 인정하는 반면 가족의료휴가는 노동자 가족의 건강문제에도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 병가제도의 가장 큰 특징으로서 미국의 병가제도는 노동정책과 의료정책의 기능에 더하여 가족정책의 역할까지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 병가제도의 구조를 보면 일단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시장에는 단기병가, 유ㆍ무급병가 그리고 유ㆍ무급가족의료휴가가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개별 사업장에 따라 그 내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다. 또한 개별 사업장이 도입하고 있는 병가제도들은 모두 노동자와 사용자의 단체협약(collective bargaining)이나 피고용인과 고용인 간의 개별 계약(personal contract)에 의거한 것이므로 법적 강제성이 전혀 없으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한편 공적 영역(public sector)이라 할 수 있는 정부 차원에서는 연방정부와 주 및 지방 정부에서 몇 가지 병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먼저 연방 차원에는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에서1993년 도입한 무급가족의료휴가와, 역시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에서 2015년 도입한 유급단기병가가 있다. 이 중 무급가족의료휴가는 의회를 통과하여 대통령의 인준을 받은 정식 법령(FMLA: Family Medical Leave Act)인 반면 유급단기병가는 의회의 표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다. 그리고 2022년 현재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한 9개의 주정부와 워싱턴DC에서 유급가족의료휴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거나 도입에 성공하였다(Williams, 2022).

이를 요약해 보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 미국은 일부 사업장과 일부 주 및 지방 정부에서 유급병가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연방 차원에서는 무급병가제도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 정부 차원에서의 병가제도는 노동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건강문제까지 휴가 사유로 인정하는 포괄적인 가족의료휴가의 형태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이 글의 초점은 연방 정책이기 때문에 1993년 도입된 가족의료휴가법(FMLA: Family Medical Leave Act)과 현재 논의 중인 유급가족의료휴가(PFML: Paid Family Medical Leave) 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룬다.5) 특히 법안의 논의와 발달 과정을 천착하여 미국 병가제도 형성의 의미를 짚어본다.

3. 미국 연방 병가제도의 태동

1980년에 집권한 공화당 레이건 행정부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를 주창하며 전반적인 복지정책의 축소에 정치력을 집중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 확장기를 맞이하였던 미국 복지국가에 침체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보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84년 진보 성향의 유력한 여성가족운동단체인 NPWF(National Partnership for Women and Families)가 연방 차원의 병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론화한다. 이 주장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민주당과 노동운동단체들은 연방 병가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후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로비와 동원은 미 정치권과 노조의 기조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미 연방 차원에서 최초로 도입된 병가제도로 가족의료휴가법(Family Medical Leave Act, 이하 FMLA)이 탄생한다.

FMLA는 무급병가제도로 노동자 본인 및 가족의 건강문제가 발생할 경우 12주의 ‘직무보장 무급휴가(job-protected unpaid leave)’ 제공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정책이다. FMLA는 비록 ‘무급’병가제도이지만 연방 차원의 육아휴직조차 없던 당시,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노동자들에게 최대 12주동안 ‘쉼의 권리’를 연방법으로 보장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정책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FMLA는 미국식 병가제도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는 휴가 인정 사유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이다. 다른 복지국가들에서 병가제도는 노동자 본인의 건강문제를 중심으로 발달한 반면 FMLA는 가족건강 및 가족문제(family-relevant events)까지도 휴가의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이를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FMLA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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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미국 가족의료휴가법(FMLA)의 주요 내용

대상자
  • - 모든 연방, 주, 지방정부 공무원(교원 포함)

  • - 50인 이상 사업장의 임노동자로 해당 사업장에서 12개월 이상 그리고 1,250시간 이상의 근로 경력자

인정되는 사유
  • - 본인의 심각한 건강문제

  • - 본인 또는 배우자의 출산과 입양

  • - 배우자, 자녀, 부모의 심각한 건강문제(배우자의 부모는 제외)

  • - 배우자, 자녀, 부모의 군 소집 및 파병 시(배우자의 부모는 제외)

관할 부처
  • 노동부(Department of Labor, DOL)

위반조항
  • 법안 위반 시 건당 $ 173의 벌금

출처: U.S. Wage and Hour Division (2012)을 참고하여 작성함.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상자는 교원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civil servant)과 50인 이상 사업장의 임노동자로 해당 사업장에서 12개월 이상 그리고 1,250시간 이상의 근로 경력이 있는 자이다. 정책의 대상자가 되려면 취업 후 1년의 유예기간(probation period)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휴가가 인정되는 사유는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본인의 심각한 건강문제이고, 둘째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출산과 입양 시이며, 셋째는 배우자, 자녀, 부모의 심각한 건강문제인데 이때 배우자의 부모는 제외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우자, 자녀, 부모의 군 소집 및 파병 시로 이때도 역시 배우자의 부모는 제외된다. 한마디로 FMLA는 단지 노동자의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육아휴직과 가족돌봄의 기능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병가제도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독특한 미국식 병가제도가 탄생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FMLA가 법제화된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역학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FMLA 도입 논의는 보수화된 정치사회 환경에서 태동하여 오랜 기간 꾸준히 사회적 지지세력들을 확장해 나가는데, 그 핵심고리가 ‘가족주의’였다. 최초 FMLA가 입안될 때만 하더라도 진보적인 시민단체들, 특히 여성 및 가족권리 보호단체들이 법안을 지지하는 주요 세력이었다. 하지만 이후 중도와 보수적인 이익집단에 이르기까지 그 지지기반을 확장해 나간다. 예를 들어 중도적 성격의 전국 학부모-교사 연합(National PTA: National Parent Teacher Association)이나 중도-보수적 성격의 전미 은퇴자연합(AARP: 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그리고 보수적 색채가 매우 짙은 가톨릭 연합(Catholic Conference) 등의 종교단체들이 법안을 지지하는 주요 세력이 된다. 이들은 모두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미국 내 가장 유력한 이익집단들이었는데 이들의 지지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Lenhoff & Bell, 2009).

FMLA의 대상자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아동과 노인을 포함한 가족 전체이기 때문에 관련 이익집단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노동단체들의 노선 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남성중심이었던 1980년대 당시 노조 지도부는 가족돌봄을 강조하는 본 법안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이 여성 노동자들의 동원(mobilization)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난 후 적극 지지로 입장을 선회한다. 이렇게 민주당, 노조 그리고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시민단체로 이루어진 FMLA 연합을 구성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90년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다.

하지만 양원을 통과한 FMLA는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나는데, 바로 법안 반대 연합의 등장이었다. 미국 내 대표적 경영자단체(Pro-Business Group)로 구성된 반대 연합은 제도 도입을 ‘무조건’ 반대하며 백악관에 대한 직접 로비에 나선다. 여기에는 미 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 등 미국 내 주요 비즈니스 이익집단들이 대거 동참하였다. 이들의 전략은 의회에 대한 로비를 통하여 법안을 수정하거나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을 직접 압박하여 대통령 거부권(veto)으로 법안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1991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다(Lenhoff & Bell, 2009). 한편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클린턴의 캠페인은 FMLA를 민주당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부시 측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결국 백악관과 양원을 탈환한 클린턴 행정부는 1호 법안으로 1993년 FMLA를 법제화한다(Gelinne, 2021).

4. FMLA의 파급효과와 후속 논의

FMLA는 도입 후 무리 없이 본궤도에 안착한다. 2021년까지의 집행 현황을 살펴보면 총 3억 2천만 건의 무급병가가 사용되었고 연평균 1천5백만 명이 제도의 대상자가 되었다(National Partnership for Women & Families, 2022). 한편 아래 [그림 2]에 제시된 휴가 사용 이유를 보면, 본인 건강문제가 절반을 약간 넘어 가장 많았고 출산 및 입양이 그다음을 이었으며 부모 및 배우자 보살핌과 자녀 돌봄이 그다음의 이유로 지목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FMLA가 명목상으로는 가족의료휴가이지만 전체 사용 사유의 약 3/4 정도(73%)가 본인의 건강 또는 출산과 관련된 이유라는 것이다. 즉 ‘병가(medial leave)’의 기능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연방 차원의 출산휴가 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정책의 유의미한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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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미국 휴직제도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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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ational Partnership for Women & Families (2022)에서 인용함.

또한 FMLA가 시행된 이후 연방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주정부 차원에서도 포괄적인 ‘유급병가’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무엇보다 큰 변화는 친비즈니스단체(Pro-Business Group)의 분화였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같이 대기업 집단(large cooperation) 위주의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유급병가 도입을 촉구하는 입장으로 돌아선다(Bellstrom & Hinchliffe, 2019).6)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10개의 주 및 지방 정부에서 실제로 유급병가를 도입하는 성과를 거둔다. 그리고 주 단위 유급병가 도입은 다시 연방정부 차원의 유급병가 논의로 발전하며 ‘주-연방 상호확장 모델’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편 이와 같은 주정부 움직임에 자극받아 연방 차원의 유급병가 논의가 본격화되고 2019년 민주당 주도로 ‘가족의료휴가보험법(Family and Medical Insurance Leave Act, 이하 FAMILY Act)’이 입안된다. FAMILY Act의 주요 내용은 FMLA의 틀을 유지하며 12주의 ‘유급병가’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는데 통상 임금의 66%를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대상자의 범위는 FMLA보다 넓어서 모든 임노동자와 자영업자를 포함하고, 사회보험방식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0.2%의 급여세(payroll tax)를 신설하고 연기금(FAMILY Trust Fund)을 구성하여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Congress. Gov, 2019).

그런데 이 법안은 의회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거치기도 전에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는 이 시기 모든 정치 이슈들을 삼키며 정치사회적 관심은 모두 구제 법안들에 쏠리게 된다. 그리고 2021년 민주당이 양원을 탈환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며 초대형 패키지법안인 ‘더 나은 재건 법안(Build Back Better Act, 이하 BBBA)’이 등장하는데 이 법안의 주요 정책 항목 중 하나로 연방 유급가족의료병가(Paid Family and Medical Leave, 이하 연방 PFML)정책이 포함되며 미국 연방 차원의 유급병가 논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5. 연방 PFML 정책의 등장

연방 PFML의 초안은 앞서 설명한 FAMILY Act를 기반으로 하여 작성된 법안이었다. 따라서 법안의 주요 골자가 사회보험방식의 FAMILY Act와 거의 유사하였다. 하지만 FAMILY Act가 단독법안(stand-alone bill)으로 상정되었던 것과 달리 연방 PFML은 BBBA라는 패키지법안(package of bills)의 한 정책 항목으로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결국 연방 PFML의 정책 성격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연방 PFML을 BBBA에 포함하고 이를 예산조정권(budget reconciliation)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고육책을 선택한다.7)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연방 PFML은 원안이었던 사회보험방식에서 일반조세로 운영되는 ‘재량프로그램(discretionary program)’으로 정책의 성격이 전환된다. 아래 <표 2>는 FAMILY Act와 연방 PFML의 주요 내용을 비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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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미국 FAMILY Act와 연방 PFML 비교

FAMILY Act 연방 PFML
운영 방식 사회보험방식 (소득의 0.2% 급여세 신설) 무기여 조세방식 (연방 일반재원에서 조달함)
유급휴가 기간 12주(FMLA와 동일함) 4주
지급 금액 월평균 급여의 66% (소득 상한 있음) 소득 구간별 차등적 소득 대체율 (소득 상한 있음)
정책 적용 대상 모든 임노동자 및 자영업자 모든 임노동자 및 자영업자
병가 인정 가족의 범위 본인, 배우자, 자녀, 부모(FMLA와 동일함) FMLA 기준에서 조부모, 손자녀 추가

출처: 117th Congress (2021)를 참고하여 작성함.

제도의 성격이 사회보험방식에서 재량프로그램으로 바뀌며 정책의 주요 내용도 대폭 수정된다. 연방 PFML의 하원 최종안은 무엇보다 비기여(non-contributary) 조세방식이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 규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상자의 범위는 유지하되 유급휴가 기간을 기존 12주에서 4주로 단축하였다. 다시 말해서 FMLA에 규정된 대로 12주의 가족의료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4주만 유급휴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대신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여 가족정책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FMLA의 경우 본인, 배우자, 자녀, 부모까지만 가족의 범위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연방 PFML은 이에 더하여 조부모와 손자녀까지 가족의 범위에 포함하고, 배우자의 외연을 확대하여 동성 배우자도 포함하였다.

또 임금 수준별 차등적인 소득 대체율(scaled wage replacement)을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당(weekly) 소득이 290 달러 이하인 경우 임금의 90%를 보전해 주고, 최고 소득 인정액(wage cap)인 주당 1,190 달러의 경우 임금의 50%를 보전해 준다(Popper, Shur, & Gajda, 2021). 한편 주정부와 기업의 유급병가와 연계하기 위하여 연방지원금(federal grant)이나 비용상환(reimbursement)을 통해 재정을 보상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즉 이미 유급병가를 시행하고 있는 주정부나 기업의 경우 연방 PFML의 기준 내에서 수당 지급 시 이를 연방정부에 청구함으로 역차별이나 상대적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이다. 미 의회예산국의 추정에 의하면 하원 최종안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할 경우 매년 200억 달러, 약 28조 원 정도의 연방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Congressional Budget Office, 2021).

2021년 11월에 하원을 통과한 BBBA는 상원에서는 암초를 만난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전원(50석)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두 명의 의원이 법안의 대폭 축소를 요구한 것이었다. 10여 개월의 협상에도 이들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한 민주당 의회 지도부는 결국 지난 회기에서 법안의 상원 상정을 포기하고 작년 11월 중간선거를 치른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미국 중간선거는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의 선전으로 막을 내린다. 일단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1석을 추가하여 51석으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였다. 한편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였지만 공화당의 압도적 승리, 일명 붉은 물결(red wave)은 발생하지 않았고 과반에서 단 4석을 추가하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이러한 정치적 지형에서 BBBA는 사실상 폐기된 법안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써 연방 PFML 도입은 일단 좌절되었다고 볼 수 있다.8)

그렇지만 연방 PFML은 BBBA에 포함된 여러 정책 항목들 중에서 향후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정책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민주당내 최대 계파를 형성하고 있는 진보코커스(Progressive Caucus)에서 일찍이 BBBA가 좌초될 경우 연방 PFML을 단독법안으로 재상정할 것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김태근, 2021). 만약 연방 PFML이 단독법안으로 상정될 경우 오히려 원안이었던 사회보험방식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연방 PFML이 재량프로그램으로 전환된 데에는 ‘정책적’ 이유가 아닌 패키지법안과 예산조정권이라는 ‘정치적’ 영향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단독법안으로 상정할 경우 이러한 정치적 고려를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회보험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유급병가 적용 기간도 원안이었던 12주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6. 나가며: 미국 병가제도의 함의와 전망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의 연방 유급병가제도는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경험은 국가 차원의 유급병가가 부재하며 현재 그 정책적 활로를 모색 중인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미국 병가제도의 발달 과정을 정리하면 몇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먼저 ‘연방 무급휴가’에서 ‘주 유급휴가’로, 또 다시 ‘연방 유급휴가’로 확대되어 가는 미국식 점진주의적 제도발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즉 무급병가정책의 도입으로 먼저 ‘쉴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 토대 위에서 유급병가 논의를 발전시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유급병가(또는 상병수당)제도의 실효성을 위해 노동정책으로서 쉴 권리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진주의적 접근은 정책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대표적으로 법률 적용 사업장의 규모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초 FMLA는 50인 이상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이후 등장한 주정부 차원의 유급병가제도에서는 정책의 적용 범위를 더 영세한(예컨대 10인 이상) 사업장으로까지 확대하고 다시 연방 PFML에서는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 사업장으로 확대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병가제도 도입에 가장 반대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s)는 비즈니스집단(business group)이었고, 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설득이 병가제도 도입의 주요 관건이었는데, 점진주의적 접근은 비즈니스집단의 반발을 희석하는 데에 유효한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포괄성으로 사회적 지지를 규합하여 불리한 정치지형을 극복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책의 대상을 노동자만이 아닌 아동과 노인까지 확대하고 이를 통하여 사회 저변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의 병가제도는 노동자의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가족돌봄의 기능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가족의료휴가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또한 육아휴직 부재 등 탈가족화 정책이 미비한 미국 복지국가의 현실을 반영한 접근이었다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병가제도 발전은 노동정책을 넘어 소득보장정책과 가족정책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정책 발달사에서 대부분의 주요 사회정책들은 민주당이 의회권력과 대통령을 동시에 석권한 상황에서 입법화되었다. 이런 점에서 백악관과 양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지난 회기에 BBBA와 그 속에 포함된 연방PFML 도입을 관철하지 못한 것은 미국 복지국가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이번 의회의 정치지형도 녹록지 않은데 앞서 설명한 대로 공화당에 하원을 내준 것이 민주당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이후 연방 유급병가 도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초당적(bipartisan) 합의를 통해 연방PFML이 도입될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화된 정치적 양극화를 고려할 때 그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FMLA의 도입 과정에서 보았듯 이미 사회적 지지가 확보되었고 정책적 논의가 상당히 진전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유급병가는 정치적 여건만 형성된다면 언제든지 입법화할 수 있는 정책이라 하겠다.

Notes

1)

물론 1960년대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를 도입하여 사적 영역(private sector)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의료체계에 연방정부가 일정 부분 개입하지만, 이 둘은 정책의 성격과 대상을 고려할 때 보편적 건강보험제도(universal health insurance)로 볼 수 없다.

2)

미국에서는 ‘병가’를 표현하는 단어가 지역과 산업 등에 따라 다양하다. 그래서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유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먼저 정책의 분석 틀과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미국에서 휴직이라는 용어는 개별 사업장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수 주에서 수개월의 노동 중단을 의미한다.

4)

이 글에서는 sick leave를 ‘단기유급병가’ 그리고 medical leave를 ‘유급병가’라고 번역한다.

5)

앞서 언급한 연방 유급단기병가(paid sick leave)의 경우 매우 제한된 특수 사업장(예컨대 연방 정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있는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명령이다(The White House Office of the Press Secretary, 2015).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제외한다.

6)

이미 많은 대기업 집단에서 자체적인 유급병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방 차원의 유급병가 도입은 이들의 비용 절감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다.

7)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김태근(2021)에 소개되어 있다.

8)

민주당이 상원에서 1석을 추가하여 51석을 차지하였지만 두 명의 BBBA 반대 의원이 현직을 그대로 유지함에 따라 여전히 법안 통과에 필요한 5석 확보에는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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