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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호, 통권 18호 2021 가을호, Vol.18

임신중지의 법적 자유화와 의료서비스의 공적 보장을 중심으로 본 임신중지 정책의 국제적 동향

Legalization and Public Health Support for Abortion: Focused on International Situation

초록

1994년 이후 50개 국가가 임신중지의 법적 허용 범위를 더 넓히는 자유화 방향으로 낙태법을 개혁하였다. 이에 따라 2021년 현재 임신중지 자유화 국가는 약 70개 국가에 이르게 되었다. 임신중지의 자유화(합법화)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필수적 요건이지만, 임신중지 자유화 국가들 사이에서도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공적으로 보장하는 정도와 방식은 상이하게 나타났다. 임신중지 비용을 공적 의료보험으로 전액 지원하는 자유화 국가는 전체의 20%에 해당되는 14개 국가이고, 공공의료시설에서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그보다 많은 19개 국가이다. 그 외 9개 국가는 의료 비용을 공적 보험과 개인이 분담하고 있으며, 18개 국가는 임신중지 사유나 인구사회적 기준을 충족하는 일부 여성에 대해서만 의료서비스 비용 전체를 지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9개 국가는 법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면서도 공적인 지원은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다. 여성들이 사회경제적 차별 없이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의료서비스의 공적 전달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1. 들어가며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1953년에 정부 수립과 함께 만들어져 존속해 온 낙태죄 조항은 2021년 1월 이후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법적 변화는 임신중지를 비롯하여 재생산(생식) 전반에 대한 정부의 관리․통제 정책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음을 의미한다.1)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던 임신중지는 허용과 처벌의 형법적 대상에서 안전성과 형평성을 충족하는 공적 의료서비스의 대상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지난 20여 년간 국제 인권·보건의료 담론 및 정책에서 임신중지의 법적 허용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필요조건으로 주목받아 왔다(WHO, 2020).2) 사실 임신중지를 불법화하는 금지 정책은 임신중지의 발생 건수를 줄이도록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방식으로 임신중지가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임신중지가 불법인 국가의 임신중지 발생 건수는 임신중지 허용 국가의 그것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성사망률 8~18%가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 시술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Grossman, Grindlay, & Burns, 2016). 임신중지 정보 제공, 상담, 의료 등의 서비스 수준(안전성과 전문성)과 접근성은 최소한 임신중지가 합법적 영역으로 옮겨진 이후에 확보될 수 있다.

법적인 변화가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의 안전성과 접근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필요조건이라면,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의 목적을 여성 인권 보호로 재규정한 것은 충분조건이다.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ICPD: 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 Program of Action)는 그동안 인구정책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던 임신중지를 여성의 인권, 특히 재생산 권리(reproductive rights) 보장의 문제로 전환하였다. 임신중지를 재생산 권리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임신중지 선택(자기결정)을 허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자기결정이 가능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의료적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의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 가이드라인과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안 등이 제출되었다(하정옥, 2017).

이 글에서는 국제적 수준에서 임신중지법(낙태법)과 공공의료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국제 현황은 국제 인권기구의 규범적 영향과 더불어 개별 국가의 역사와 문화, 국내 정치 등의 역동적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각 국가의 개별적 사례에 집중하기보다는 최근의 변화 추세를 확인하고, 국가별 정책 차이 현황을 요약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에 만족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제적인 임신중지 정책의 동향을 법적 허용 범위 변화 추세와 의료서비스 및 비용의 공적 보장 방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세계 각국의 낙태법이 점차 자유화되는 추세를 확인하고, 가장 법적인 허용성이 큰 나라들 내부에서도 의료보장의 범위가 차별적인 현황을 살펴본다. 끝으로 임신중단 행위의 합법화는 재생산 권리 보장의 선결 요건일 뿐이므로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충분조건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논의한다.

2. 임신중지법의 유형과 자유화 추세

가. 임신중지의 법적 자유화 정도

세계 각국은 형법을 통해 임신중지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캐나다(1988년)와 호주(2021년)가 형법상의 임신중지 처벌 규정을 전면 폐지하였으나, 대부분의 국가는 임신중지를 형법상 처벌 조항으로 규정하면서 처벌 예외 사유(허용 사유) 규정을 통해 임신중지를 규제하고 있다. 각국이 법적으로 인정하는 임신중지 허용 사유가 얼마나 포괄적인가에 따라 임신중지 법 정책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법적 허용 사유의 분류 방법을 중심으로 국제적 현황을 정리한다.3)

임신중지의 법적 허용 사유 목록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허용하지 않는 극단적인 불허 정책(유형 1)부터 본인의 요구만 있으면 어떤 제한도 없이 법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유형 5)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에는 임신중지 허용 사유의 포괄성 정도에 따라 유형 2, 유형 3, 유형 4가 배치될 수 있다. 유형 2는 임신한 여성의 생명 위협 상황을 임신중지 허용 사유로 인정하는 경우를 지칭하고, 유형 3은 임신한 여성의 건강상 필요를 임신중지 허용 사유로 인정하는 경우이다.4) 유형 3 안에서도 건강 관련 사유를 신체적 건강 사유만으로 제한하는 경우와 신체적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 건강 사유까지 넓게 포함하는 경우로 구별할 수 있다. 건강상의 사유를 넓게 인정할수록 임신중지 규제 정책의 성격은 금지보다는 허용 쪽에 가까워진다. 유형 4는 사회적 사유 또는 경제적 사유를 임신중지 허용 사유로 인정한다. 이러한 유형 4에는 사실상 모든 사유가 포함될 수 있으므로 임신중지 요청의 대부분이 받아들여지는 정책 유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유형 4는 유형 2, 유형 3과 마찬가지로 임신중지가 필요한 상황임을 다른 의사나 전문가가 증명하거나 승인해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유형 5와 차이가 있다. 본인 요청에 의한 임신중지(abortion on request)(유형 5)는 의사나 다른 전문가가 임신중지가 필요한 상황임을 증명하거나 승인해 줄 필요가 없으며, 임신한 여성만이 임신을 지속할지 아니면 중지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형 1에 가까울수록 제한적인 임신중지 정책이라면 유형 5에 가까울수록 자유화된 정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각 유형 안에서도 임신중지를 요청하는 여성의 연령 규정을 두거나, 배우자나 부모의 승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인공임신중절 시 배우자의 승인을 요구해 왔다. 또한 본인 요청만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유형 5에서도 대부분 임신 주수에 따른 기간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본인 요청만으로 임신중지를 가능하게 하되 그 기간을 임신 8~24주 사이의 한 시점을 기준으로 제한한다.5)

나. 임신중지법의 변화 추세

세계적 차원에서 임신중지법은 점차 법적 허용성을 넓히는 경향이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인 재생산권리센터(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1994년 이후 2019년 현재까지 50개 국가(또는 자치주)가 임신중지 규제 정책을 자유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6) 그중 15개 국가(또는 자치주)는 법적 허용성이 가장 큰 유형 5(본인 요청)로 전환된 곳들이다(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2021a).

이들 15개 국가를 법적 변화가 이루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1990년대에 변화가 있었던 나라는 가이아나, 알바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캄보디아 등이고, 2000년대에 유형 5로 진입한 나라는 스위스, 네팔, 포르투갈 등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스페인, 룩셈부르크, 우루과이, 모잠비크, 아일랜드 등이 본인 요청에 의한 낙태 허용으로 전환되었다(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2021a). 2019년 이후 현재 사이에는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이 유형 5로 전환되었다(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2021b).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지역(유형 4)은 에티오피아, 피지, 르완다 등으로 집계되었다. 유형 1이나 2에서 유형 3으로 전환하거나 유형 1에서 유형 2로 변화된 나라도 총 29개 국가(또는 자치주)에 이른다(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2021a).

이와 같이 지난 25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낙태법이 자유화되는 추세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7) 임신 주수 제한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본인 요청, 즉 여성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낙태 허용 사유로 인정하는 유형 5에 속하는 나라의 수는 1994년에 비해 15~18개 국가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낙태의 법적 허용 기준을 넓혀서 사실상 비범죄화하거나 아예 형법상 처벌 규정 자체를 폐지한 나라들 사이에서도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누리는 재생산 권리(낙태권)의 상태는 매우 다양하다. 의료서비스와 의료보장 현황을 통해 이 문제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3. 임신중지 자유화 국가의 의료보장 현황

2016년 유엔 사회권위원회(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는 ‘성과 재생산 건강권에 관한 일반논평 22(General Comment No. 22 on the Right to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를 발표하여 성과 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이른바 ‘AAAQ 프레임워크’라고 불리는 이 네 원칙은 서비스의 가용성(availability), 접근성(accessibility), 수용성(acceptability), 질(quality)을 내용으로 한다. 사회권위원회는 피임, 응급 피임, 낙태 의료와 낙태 후 케어 등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명시한다(하정옥, 2017, pp. 74-75).

국제 인권 규범이 이처럼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로 확장된 것은 이미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다. 이때 확인한 인권(human rights)으로서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 선언을 계승하고 구체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임신중지는 형법적 통제 대상에서 여성의 인권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전환되기 시작했으며,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평등하게 접근할 권리의 보장이라는 구체적인 요구가 부상했다.

그렇다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체적인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는 어떻게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이하에서는 위에서 다룬 임신중지 법 유형 중 유형 4(사회적, 경제적 사유)와 유형 5에 해당되는 나라를 ‘임신중지(낙태) 자유화 국가’라고 칭하고, 이 국가들 내에서 의료서비스 접근성 보장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는 수술적 방법과 약물 방법이 모두 활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약물 임신중지(medical abortion) 방법의 규제 내용과 접근성은 다루지 않고, 수술 의료에 초점을 맞춘다.8)

<표 1>은 임신중지 자유화 국가 70개국의 의료서비스 공적 보장 유형을 몇 가지로 구분한 것이다. 첫 번째 범주는 건강보험을 통해 임신중지에 소요되는 의료 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국가들이다. 70개 임신중지 자유화 국가 중 20.0%를 차지하는 14개 국가가 이에 해당된다. 캐나다, 프랑스, 슬로베니아 등은 이미 1994년 이전에 임신중지를 합법화 또는 비범죄화한 나라들로서 보편적 의료보험으로 임신중지 비용 전액을 환급해 준다. 네덜란드는 정부보험(거주자 기준 보편적 보장)을 통해 모든 거주 여성의 임신중지 의료 비용을 보장한다(Pinter et al., 2005). 2018년 이후 임신중지를 자유화한 아일랜드, 뉴질랜드, 아르헨티나도 인공임신중지를 필수의료서비스 대상으로 간주하고 국민건강보험으로 의료비를 전액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김동식, 김정혜, 동제연, 김채윤, 2019; 수경,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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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낙태 자유화 국가의 공적 의료서비스 지원 현황(70개국)

전체 여성에게 전액 지원 일부 여성 또는 일부 금액 지원 지원 없음 (9개 지역)
국민건강보험 (14개 지역) 공공의료시설 무상 이용 (19개 지역) 공공의료시설 이용요금 낮음 또는 비용 부분 보조 (9개 지역) 일부 여성에 대한 전액 또는 부분 지원 (19개 지역)
국가 또는 지역명 벨기에
캄보디아
캐나다
쿠바
프랑스
아이슬란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북한
슬로베니아
스페인
우루과이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호주
아제르바이잔
바베이도스*
덴마크
그리스
가이아나
아일랜드
인도*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노르웨이
포르투갈
러시아
남아공
튀니지
우크라이나
영국*
우즈베키스탄
잠비아*
벨리즈*
카보베르데
핀란드*
몬테네그로
싱가포르
스웨덴
스위스
투르크메니스탄
터키
아르메니아
알바니아
벨라루스
불가리아
중국
크로아티아
체코
피지*
독일
헝가리
리투아니아
몰도바
몽골
키르기스스탄
라트비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미국
오스트리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일본*
네팔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세르비아
대만*
타지키스탄
베트남

주: *표시한 국가는 사회적 사유 또는 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국가들이며, 표시하지 않은 국가들은 본인 요청 사유를 인정하는 사례임.

자료: 의료 비용 공적 지원 현황은 그로스먼과 동료들(Grossman et al., 2016)의 집계와 분류에 의존한 것이나, 본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형 3과 유형 4는 필자가 재분류했고, 아일랜드, 뉴질랜드, 아르헨티나는 보고서(김동식 외, 2019)와 신문기사(수경, 2021)를 참고하여 최근의 정책 변화를 반영함.

두 번째 범주는 공공의료시설에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국가들이다. 이 유형에 해당되는 국가는 70개 낙태 자유화 국가 중 27.1%를 차지하는 19곳이다. 이 중 바베이도스, 인도, 영국, 잠비아 등 4개 국가는 사회적 사유 또는 경제적 사유를 광범위하게 임신중지 사유로 인정하는 유형 4에 속한다. 나머지 14개 국가는 유형 5에 해당된다. 이 유형에서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거나 정부가 공인한 시설에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공공의료서비스가 임신중지 접근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시설이 충분한 규모로 전국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의료서비스의 수준 또한 민간 의료시설의 의료서비스보다 우수하거나 적어도 낙후되지 않아야 한다. 즉 앞서 재생산 권리 보장의 원칙으로 제시한 AAAQ의 원칙이 실현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러나 영국, 호주 등 공공의료시설에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에서는 공공시설이 충분하지 못하고 전문인력을 원활하게 양성하지 못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일찍이 1967년 낙태법(Abortion Law)을 제정하여 공공의료서비스 영역에서 임신중지 의료를 제공하는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임신중지 서비스는 국가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 외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이 여성은 물론 의료인에게까지 가해지는 상황이 의료인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임신중지 의료를 수련하고 의료를 제공하는 것을 꺼리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전문적인 임신중지 의료 및 케어에 관한 훈련을 받은 의료 인력의 수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왕립 산부인과대학(RCOG: Royal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은 2007년 이후 낙태 케어를 위한 심화 훈련 모듈을 마련해 놓고 있는데, 이 모듈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영국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하려고 할 때 형평성 있는 접근권을 누리지 못하고, 적절한 훈련을 받은 의료 인력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며, 낙인이나 게토화에 처할 위험이 높다고 경고받고 있다(Goldbeck- Wood, 2017).9)

호주도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무료로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Grossman et al., 2016).10) 호주는 국가공공건강보험제도인 국민의료보험(Medicare)을 운영하고 있다. 보건의료재정은 일반세와 보험세 등 조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의(GP: General Practice)가 운영하는 1차 의료시설은 모두 메디케어 대상이다. 전문의 진료는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에서 이루어지고 공공병원의 진료만 무상으로 제공된다. 민간병원에서의 전문의 진료 비용에 대해서도 일부이지만 메디케어가 보상한다(이평수, 2014). 메디케어는 임신중지 수술을 보장 항목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임신중지 접근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Baird, 2017).

그러나 민간병원 이용 시 메디케어의 보상 수준은 일부에 국한되기 때문에 개인이 본인부담금을 지불하거나 별도로 가입한 민간보험을 통해 비용을 조달해야 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초기 임신중지 비용에 대한 보장 수준은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임신 주수가 늘어날수록 의료 비용은 늘어나고 보장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호주는 전통적으로 공공보건 의료체계를 잘 갖추고 있는 나라이지만, 1990년대 후반 민간보험의 가입자 수를 늘리고 적용 항목 수도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이 추진되었다(이평수, 2014, p. 75). 이러한 의료환경 변화는 대부분의 임신중지 수술이 공공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들고, 민간병원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의 문제를 초래한다. 의료서비스 비용의 개인화는 재정적 여유가 없는 여성들이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제약 요인이다(Baird, 2017).

<표 1>에서 세 번째 범주는 전체 의료 비용 중 부분적으로만 공적 지원을 하는 국가들로 전체 70개 국가 중 9개 국가(12.9%)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이 글에서는 그로스먼과 동료들(Grossman et al., 2016)이 세 번째 유형으로 분류한 국가 중에서도 경제적 수준, 혼인 상태, 연령 등 인구사회적 요건을 의료비 지원 요건으로 부과하는 국가들은 네 번째 유형으로 재분류했다. 이러한 사례를 제외하고 모든 여성에게 임신중지 비용을 지원하되 임신중지 비용을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사례만을 세 번째 유형으로 묶었다. 싱가포르,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터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네 번째 유형은 여성의 임신중지 사유(강간, 건강상의 이유), 연령이나 혼인 상태(예: 미성년 여성이나 기혼 여성), 소득(저소득층) 등의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임신중지 의료서비스 비용을 공적으로 지원하는 경우이다. 낙태죄 폐지 이전의 한국이 이 유형에 속한다. 우선 특정 연령의 여성들에 대해서만 의료 비용을 지원하는 나라로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몰도바, 몽골 등이 있다. 저소득층 여성을 특정하여 지원하는 경우는 아르메니아, 독일 등이 있다. 낙태죄 폐지 이전의 한국은 독일과 더불어 강간 피해와 건강상의 이유로 낙태를 하는 경우에 의료비 지원을 한다. 마지막으로 기혼 여성에게만 임신중지 의료 비용을 제공하는 국가로는 중국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여성 중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여성들에게만 의료비 지원을 하는 사례에 해당되는 국가는 19개 국가로 전체의 27.1%를 차지한다.

마지막 범주는 어떤 공적 의료서비스 및 비용 지원 없이 형법상으로만 낙태를 자유화하고 있는 9개 국가들이다(12.9%). 여기에는 보스니아, 세르비아, 타지키스탄 등 동유럽 또는 구소련 지역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대부분 여기에 포함된다. 서비스의 형태와 비용 지원의 측면에서 공적 지원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이들 국가에서 임신중지가 적어도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최소한의 임신중지 접근성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 이용이 공적인 권리로서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은 실질적인 접근성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이들 사회가 여성의 임신중지권에 대해 소극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4. 나가며

가장 최근 임신중지를 자유화한 국가는 아르헨티나이다. 아르헨티나는 임신중지접근법을 제정하고,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여성 및 기타 성 정체성을 가진 임신 가능한 자의 인권과 공중보건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책무를 수행하고 예방 가능한 질병률과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 임신중지와 임신중절 이후의 의료적 처치에 대한 접근권을 법제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5조는 “제5조(건강권) 임신한 자는 모두 보건의료서비스 시스템 내에서 임신중지권을 갖는다. 임신중지를 요청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본 법안과 관계 법령에서 정한 바에 따라 임신을 중지할 수 있다”고 임신중지가 보건의료 시스템이 보장하는 의료행위가 됨을 명확히 하고 있다. 나아가 제12조에서는 “진단비, 의약품, 심리지원 서비스”를 포함해 임신중지와 관련된 모든 의료서비스가 전액 건강보험 대상이라는 사실을 적고 있다(수경, 2021).11)

이 글에서는 임신중지 자유화 국가로 분류될 수 있는 70개 국가들 사이에서도 임신중지와 관련된 의료서비스를 공적으로 보장하는 정도가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임신중지 관련 형법의 역사만큼이나 의료서비스 보장 정책의 역사도 국가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 인권 규범과 최근 낙태 자유화 개혁을 단행한 국가들에서 확인되는 흐름은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단지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형평성 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의료 전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 건강보험제도를 통한 급여화는 인공임신중절이 필수적 의료서비스임을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완화하고 문화적 낙인을 제거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최근 10여년 사이에 국제기구가 제공하는 정책 자료의 내용은 규범적인 원칙을 선언하는 것에서 나아가 실행 가능한 구체적 가이드라인과 지침 등으로 성숙하였다(WHO, 2012; 김동식 외, 2019).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우리나라의 임신중지 및 재생산 정책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진지하게 고려되지 못했던 여성들의 필요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Notes

1)

이 글에서는 낙태라는 전통적 용어 대신에 가치중립적 용어로서 임신중지(pregnancy termin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글에서 임신중지가 지칭하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 결정하는 자발적 또는 의도적 임신중지이므로 임신중지라는 용어 앞에 한정하는 낱말이 필요하지만 용어를 단순화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바와 같이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

세계보건기구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1) 금지주의 법, 2) 서비스 공급 부족, 3) 높은 서비스 이용 비용, 4) 낙인, 5)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의식적인 반대, 6) 불필요한 절차(의무 숙려 기간, 의무 상담, 불완전한 정보 제공, 제3자 승인 요구, 의료적으로 불필요한 검사로 인한 지연) 등을 꼽고 있다(WHO, 2020).

3)

이처럼 법적 허용 사유 범주를 포괄성 정도에 따라 배열하고 분류하는 것은 실제 개별 국가 임신중지법 사이의 복잡한 차이를 단순화한 것이다. 보다 상세한 분류 방법은 라블라넷과 동료들(Lavelanet, Schlitt, Johnson Jr, & Ganatra, 2018)의 연구를 참조할 수 있다.

4)

유형 2와 유형 3에는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태아의 신체적 사유 등을 임신중지 허용사유로서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5)

본인 요청 사유 인정 정책 사이에서도 인정되는 기간(임신 주수)을 제한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뉜다. 제한 임신 주수는 짧게는 8주부터 10주, 14주, 18주, 22주, 24주, 또는 90일, 120일 등 다양하며, 임신 주수 제한을 두지 않는 나라도 있다(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2021b). 임신 주수 제한(기간 제한)과 낙태 허용 사유 제한(사유 제한)을 동시에 고려하여 임신중지의 법적 자유화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이 글에서는 법적 자유화와 의료적 보장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한 목적에 따라 임신 주수 제한에 따른 세부적인 구분을 생략하도록 한다. 2021년 현재 각국의 기간 규제 현황은 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2021b)를 참고할 수 있다.

6)

여기에서 1994년은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를 기점으로 한 것이다.

7)

반면 미국, 구소련 지역 국가 등에서는 낙태 자유화 추세가 역전되어 임신중지에 대한 제한이 강화되었다(Singh, Remez, Sedgh, Kwok & Onda, 2018).

8)

이하의 내용은 그로스먼과 동료들(Grossman et al., 2016)의 연구 결과를 재구성한 것이다.

9)

영국 국가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 제공 및 인력 양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영국에서는 국가의료기관 이외에 국가 승인을 받은 의료기관을 통해 임신중지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김동식 외, 2019).

10)

8개 주 중 2002년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에서 비범죄화가 시작된 후 2017년까지 네 개 주에서 임신중지의 비범죄화가 이루어졌고(Baird, 2017), 그 후 호주 전역으로 확산되어 현재 호주 대륙에서 낙태는 형법에 의해 처벌되지 않는다.

11)

아르헨티나에서는 지난 1월 24일부터 새로운 임신중지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낙태에 반대하는 보수주의 진영의 반발도 거센 상황이다. 낙태반대주의자들의 위헌 소송, 보수적 의료진의 낙태시술 거부 등이 보고되어 있다(Politi, 2021).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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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2021. 2. 2.). 아르헨티나, 녹색물결이 만든 임신중지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5713에서 2021. 6. 8. 인출.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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