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복지의 조건부 경향과 과제

Recent Development and Challenges of Welfare Conditionality in the UK

1. 들어가며

‘복지 조건부(welfare conditionality)’란 복지 혜택 및 서비스의 수급 자격과 수급자의 특정한 책임·의무 혹은 행동 양식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많은 서구 복지국가에서 복지 개혁의 핵심적인 요소로 나타나고 있으며, 영국은 이러한 정책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 지난 20년간 영국 정부는 해당 개념을 고용 및 노동시장, 장애인, 한부모, 이민자 통합, 그리고 공공주택 등 여러 복지 분야에 적용해 왔다. 또한, 단순히 조건부 복지(conditional welfare)를 확대하는 것을 넘어 제재 중심의 조건부(sanctions-backed conditionality)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Adcock & Kennedy, 2015; Dwyer, 2016). 그러나 복지의 조건부 혹은 제재를 강조하는 최근 정책 변화의 효과성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제재의 확대 및 강화 측면에서 영국 복지의 조건부 경향과 현황을 개괄하고, 이어서 이의 효과성 및 과제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2. 영국 복지의 조건부 경향

영국 사회보장제도에서 조건부 복지의 개념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 수급권은 언제나 수급자의 일할 능력 혹은 실업의 자발성 여부에 따라 조건부로 주어져 왔다. 이 때문에 장애인, 한부모 등과 같은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혜택과 서비스는 조건부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복지 조건부의 범위와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제재의 강도 역시 세지고 있는 추세이다(Dwyer, 2016; Watts, Fitzpatrick, Bramley & Watkins, 2014; Welfare Conditionality, 2018).

보수당 정권(1979~1997년)하에서 1996년 구직자수당(JSA: Job Seekers Allowance) 도입을 계기로 복지 조건부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해당 정책은 구직자 합의서(Jobseeker’s Agreement)와 재취업 실행 계획(back-to-work action plan) 등과 같은 행동 지침을 표준화함으로써 실업급여 수급자의 구직 활동에 대한 감시·감독을 본격화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일하는 복지(welfare to work)’ 혹은 ‘근로 우선(work first)’ 원칙을 강조한 노동당 정권(1997~2010년)에서도 계속되었다. 국가최저임금 및 다양한 세액공제제도의 도입과 공공보육제도 확대 등과 같은 보완책이 제시되었지만, 수급자에 대한 감시·감독에 더해 의무·책임 불이행 시 급여 수급에 대한 제재 조치까지 도입함으로써 복지 조건부 경향을 더욱 강화하였다.

2000년대 들어 복지 조건부 개념은 과거 면제 대상이었던 취약계층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영국 정부는 2008년 고용지원수당(ESA: Employment and Support Allowance) 도입과 함께 장애인에 대한 복지 혜택을 조건부화하였다. 기존에 장애 관련 급여(Incapacity Benefits & Severe Disablement Allowance)와 소득보조(Income Support)를 받던 장애인에 대해 근로능력평가(Work Capability Assessment)를 실시하여 장애 정도에 따라 근로 적합(fit for work)과 근로 관련 활동 집단(Work Related Activity Group), 그리고 근로가 불가능한 지원 집단(support group) 등으로 분류하였다. 지원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두 그룹에 속한 장애인은 평가 등급에 따라 주당 최대 35시간의 구직 활동 등과 같은 수급 조건을 충족해야만 구직자수당 혹은 고용지원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보장급여를 받는 한부모 가구의 경우 자녀가 의무교육 상한 연령(만 16세)에 이르기 전까지는 노동시장 참여를 요구받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이후 근로 중점 인터뷰(Work Focused Interviews) 참여가 소득보조 수급을 위한 의무 조건이 되었다. 또한, 2008년에 시행된 한부모 의무제도(Lone Parent Obligations)에 따라 조건부 없이 소득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자녀의 연령 기준이 만 12세, 그리고 2012년에는 만 5세까지 낮아졌다. 따라서 만 5세 이상의 자녀를 둔 한부모의 경우 사실상 여타 구직자수당 수급자와 같은 선상에서 고려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 -자유당 연립정부(2010~2016년)는 2010년 기존의 여섯 가지 사회보장급여제도, 즉 소득 기반 구직자수당(Income-based JSA), 고용지원수당, 소득보조, 근로세액공제(Working Tax Credit), 아동세액공제(Child Tax Credit), 주거급여 등을 하나로 통합한 통합급여(Universal Credit)의 도입을 발표하였다.1) 캐머런 정부는 근로연령 가구원이 있는 가구에 대한 사회보장급여체계를 간결하게 만듦으로써 복지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또한 수급요건의 강화를 통해 사회보장급여 수급계층을 줄이는 동시에 이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활성화함으로써 저소득가구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장기적 관점에서 통합급여는 여국 복지재정에 상당한 절감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통합급여의 수급요건에 관한 수급자 책무(Claimant Commitments)는 여타 사회보장급여보다 높은 수준의 구직활동 의무요건을 규정함으로써 자연스레 복지 조건부를 심화하고 있다. 이에 더해, 2014년 복지노동부는 통합급여를 신청하기 이전에 수급자가 따라야 할 행동 요건을 추가함으로써 수급 요건을 한층 더 높였다.

3. 제재의 확대 및 강화

2012년 복지노동부는 구직자수당과 고용지원수당에 관한 새로운 제재 규정을 발표하였다(DWP, 2012). 새로운 규정에 따라 제재 수준은 높음, 중간, 낮음 등 세 단계로 나뉘며 수준에 따라 제재 기간이 달라지게 된다. 또한, 제재 강도 역시 기존에 첫 4주간 50% 수준(이후 100%)의 급여를 삭감하던 것에서 기간과 상관없이 무조건 100% 삭감하는 것으로 강화되었다. 따라서 가장 높은 단계의 제재를 받을 경우 최대 3년간 구직자수당, 고용지원수당 혹은 통합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일체를 상실하게 된다. 제재 수준에 따른 제재 기간은 <표 1>과 같다.

새창으로 보기
표 1.

영국 사회보장급여제도의 제재 수준2)

제재 수준 제재 기간
첫 번째 불이행 시 두 번째 불이행 시 (1년 이내) 세 번째 불이행 시 (1년 이내)
높음 13주(3개월) 26주(6개월) 156주(3년)
중간 4주(1개월) 13주(3개월) 13주(3개월)
낮음 수급 요건을 준수한 이후로 1주간 수급 요건을 준수한 이후로 2주간 수급 요건을 준수한 이후로 4주간

자료: Adcock, A., & Kennedy, S. (2015). Benefit sanctions. pp. 11-12 참조

통계상으로 구직자수당 혹은 고용지원수당 신청에 대한 이첩(referral) 혹은 제재의 비율 역시 상당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Tinson, 2015; Watts et al., 2014). 2000년대 초중반 전체 급여 신청 대비 이첩 혹은 제재의 비율은 각각 6%와 2% 정도로 유지되었지만, 2010년 보수당 정권의 집권, 그리고 2012년 새로운 제재 규정 발표 이후 각각 16%와 7%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그림 1).

새창으로 보기
그림 1.

전체 구직자수당 신청 대비 이첩 및 제재 비율의 변화(%)

gssr-7-115-f001.tif

자료: Watts, B., Fitzpatrick, S., Bramley, G., & Watkins, D. (2014). Welfare sanctions and conditionality in the UK. p. 5

4. 복지 조건부 및 제재의 효과성 논란에 대하여

복지 조건부의 주요 목표는 수급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직장을 찾고 지속적인 복지급여 수급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지지하는 이들은 복지 조건부 혹은 제재의 활용이 복지 의존성(welfare or benefit dependency)과 빈곤계층 고착화 등의 문제에 대한 공평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비판적인 이들은 조건부 복지, 특히 제재의 확대가 수급자의 취업 혹은 책임의식을 높이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의 사회적 배제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Watts et al., 2014; Welfare Conditionality, 2018).

복지 조건부의 영향에 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복지 조건부의 확대가 수급자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Welfare Conditionality, 2018). 다시 말해, 사회보장급여에 대한 제재와 구직 활동 관련 의무 규정 등이 수급자의 취업 능력이나 근로 지속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제재의 확대 및 강화라는 최근의 정책 변화 속에서 수급자 혹은 급여 신청자에 대한 실질적인 취업 관련 지원은 오히려 미비하였다. 일반 구직자와 장애인, 한부모 등은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존 사회보장급여제도가 통합급여로 통합·대체되는 과정에서 천편일률적인 접근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2014년 발표된 ‘오클리 리뷰’는 영국 사회보장급여제도의 전달체계 및 조건부와 관련한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조명하였다. 새로운 제재 규정이 크게 효과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계층에 따라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효과적인 제재의 활용을 위해서는 제재를 받는 이들이 쉽게 이해·이용할 수 있는 항소 및 보상제도(“easily accessible and understandable recourse to appeal, and potential redress”)가 병행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Oakley, 2014, p. 29).

5. 나가며

지난 20년간 영국 정부는 여러 차례의 복지 개혁을 통해 더 공정하고 단순한 사회보장급여제도를 만듦과 동시에 수급자에 대한 근로 유인책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근로 혹은 취업과 관련한 지원보다는 제재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Welfare Conditionality, 2018). 이것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추구되어 온 영국의 복지 긴축 추세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재 중심의 복지 조건부 확대는 수급자가 받는 사회보장급여 수준의 실질적인 하락이나 수급권 박탈을 통해 복지지출의 감소로 이어졌다. 그러나 수급권을 박탈당한 이들과, 근로와 복지 혜택 모두로부터 단절된 이들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크지 않은 듯하다.

영국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복지의 조건부 혹은 제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와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혹은 놓이게 된 이들에 대한 정책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 등에 관한 질문은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근로장려세제, 실업급여 등과 같은 여러 복지제도에서 근로연계복지 개념을 적용하고 있는 한국 복지국가 역시 고민해야 할 주제일 것이다.

Notes

1)

캐머런 정부는 통합급여가 2013년 10월에 시행하고 2017년 10월에 기존 제도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계획·발표하였다. 그러나 통합급여수준과 자격요건의 일부가 수정되고, 수급자 정보의 온라인 이전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들이 발생해 통합급여로 완전히 대체·이전하는 것은 2023년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DWP, 2010; Kennedy & Keen, 2018).

2)

해당 제재 기준은 통합급여와 구직자수당, 그리고 고용지원수당 등에 적용된다.

References

1 

Adcock A., Kennedy S. (2015). Benefit sanctions. London House of Commons Library.

2 

DWP. (2010). Universal Credit: welfare that works. London: Department for Work and Pensions, UK.

3 

DWP. (2012). Changes to Jobseeker’s Allowance sanctions from 22 October 2012. London: Department for Work and Pensions, UK.

4 

Dwyer P. (2004). Creeping conditionality in the UK: From welfare rights to conditional entitlements?. The Canadian Journal of Sociology, 29(2), 265-287.

5 

Dwyer P. (2016). Social Policy Review 28: Analysis and Debate in Social Policy (Vol. 28). Z. IrvingM Fenge, HudsonJ., Eds., pp. 41-61, Citizenship, conduct and conditionality: sanction and support in the 21st-century UK welfare state.

6 

Kennedy S., Keen R. (2018). Universal Credit roll-out: 2018-19. London: House of Commons Library.

7 

Oakley M. (2014). Independent review of the operation of Jobseeker’s Allowance sanctions validated by the Jobseekers Act 2013. London: Department for Work and Pensions, UK.

8 

Tinson A. (2015). The rise of sanctioning in Great Britain. London: New Policy Institute.

9 

Watts B., Fitzpatrick S., Bramley G., Watkins D. (2014). Welfare sanctions and conditionality in the UK. Jospeh Rowntree Foundation.

10 

Welfare Conditionality. (2018). Final findings report: Welfare Conditionality Project 2013-2018. York: Welfare Condi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