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여론

Public Opinion on the Introduction of Basic Income Schemes in European Countries

1. 들어가며

2016년 스위스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국민투표는 비록 부결되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전 세계에 기본소득의 개념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2017년에 시작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사회실험은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쟁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켰다. 특히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구축된 복지시스템이 탈산업화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나자 유럽 전역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는 사회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까지는 아직도 정치적, 제도적으로 수많은 난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수년 내에 국가 단위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하는 유럽인의 비율은 극히 낮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유럽 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자 2016년 22개 유럽 국가와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제8차 유럽사회조사(European Social Survey)는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지지 정도를 묻는 설문 문항을 포함시켰다. 유럽사회조사는 학술적인 목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쟁점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상황을 비교하기 위해 2002년부터 2년 단위로 수행되고 있는 설문조사이다. 유럽사회조사를 총괄하는 유럽연구기반컨소시엄(European Research Infrastructure Consortium)은 조사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출판할 뿐만 아니라 이 조사를 통해 생산된 마이크로데이터를 개인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제8차 유럽사회조사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최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여론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기존 문헌을 검토하여 2000년대 초반 유럽에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여론을 확인한다. 이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유럽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아보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

2.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2000년대 초반의 여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최근 2~3년 사이에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기본소득에 대한 선호 정도나 태도를 다룬 연구가 많지 않았고,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춘 소수의 연구는 주로 북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경향은 기본소득 도입이 복지보편주의(welfare universalism)의 확대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세계적으로 가장 관대한 복지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시스템이 기본소득의 개념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Bay와 Pederson(2006)의 연구는 2003년 노르웨이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이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인 의사를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연구에서는 석유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경제 상황, 강력한 연대의식, 정액 급여를 강조하는 사회보장제도, 종합과세의 전통 등 노르웨이 사회가 지니고 있는 특징들을 위와 같은 결과의 원인으로 파악한다. Andersson과 Kangas(2007)는 2002년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을 분석한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핀란드 국민은 3분의 2가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스웨덴에서는 기본소득 도입 지지율이 46%에 머물러 두 나라 사이의 지지율 차이가 약 20%포인트에 달한다. 스웨덴이 핀란드보다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전통을 갖고 있어 스웨덴 국민들은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욱 강하다는 점과 스웨덴 복지국가가 가장 성공적인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스웨덴에서의 지지율이 비교적 낮게 나타난 것이라고 이 연구는 분석한다. Pfeifer(2009)의 연구는 2001년에 수집된 “Eurobarometer 56.1” 데이터를 바탕으로 14개 유럽 국가에서 나타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지지율을 보여 준다. 연구에 포함된 모든 국가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이 확인되었고 특히 스페인, 벨기에, 아일랜드, 핀란드, 그리스 등에서는 지지율이 8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4개 국가 가운데 60% 이하의 지지율을 보인 국가는 스웨덴과 서독(당시 조사는 서독과 동독을 나누어 실시되었음) 둘뿐이었다.

3. 2016년 유럽사회조사에 나타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여론

제8차 유럽사회조사는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응답자의 의견을 묻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강력히 반대’, ‘반대’, ‘찬성’, ‘강력히 찬성’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지만,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가별 지지율을 추정하기 위해 응답 선택지를 ‘반대’와 ‘찬성’ 두 가지로 단순화하여 데이터를 다시 코딩하였다. 또한 국가별 지지율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유럽사회조사 데이터가 제공하는 사후층화가중치(Post-stratification weights)를 적용하였다. 제8차 유럽사회조사는 23개국에서 실시되었지만,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복지시스템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이질성이 크기 때문에 분석에서 제외하고 21개 국가만을 대상으로 지지율을 계산하였다.

우선 유럽 21개국의 기본소득 도입 지지율 평균은 54.8%였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을 비롯한 10개 국가에서는 과반 이상의 국민이 기본소득 도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반면,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11개 국가에서는 절반 이상의 국민이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지지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노르웨이로 33.8%에 그쳤고, 그다음으로 스위스와 스웨덴이 각각 35.0%와 39.4%의 지지율을 보였다. 지지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80.4%의 리투아니아이고, 그다음이 헝가리로 70%였다.

Esping-Andersen(1990)의 유형론을 바탕으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유럽 복지국가 유형 분류에 따라 지지율을 살펴보면, 같은 복지국가 유형에 속하는 국가들 사이에 기본소득 도입 찬성 비율이 유사한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핀란드(55.6%)를 제외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지지율은 30~40% 수준으로 유럽에서 매우 낮은 편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대륙에 위치한 보수주의적 복지국가 대부분은 40%대 후반의 지지율을 나타낸 반면,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로 분류되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보다 다소 우세했다. 남부 유럽 복지국가의 경우, 스페인에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에서는 기본소득 도입 찬성 여론이 60% 정도로 반대 여론을 상당히 앞섰다. 조사에 포함된 동유럽 6개국 가운데 에스토니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기본소득 도입 찬성 의견이 우세한 경향이 발견된다. 특히 슬로베니아(65.7%), 헝가리(70.0%), 리투아니아(80.4%)의 지지율은 유럽 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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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유럽 21개국의 기본소득 도입 찬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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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8차 유럽사회조사(2016)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자가 직접 추정함.

4. 나가며

지금까지 살펴본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유럽 내 여론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기본소득 도입 지지율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2016년에 크게 하락했다. 특히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서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국민의 관점 변화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대중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기본소득 도입을 단순히 보편적 복지급여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기본소득을 둘러싼 다양한 토론과 논쟁이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기본소득 도입은 기존 복지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편을 수반한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다. 실제로 스위스 국민투표 과정에서 기본소득 도입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 이 점을 인정했다(Geiser, 2016). 이러한 인식이 퍼지면서 기본 복지시스템을 급진적으로 개혁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설득력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복지지출을 위한 국가 재정 능력과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여론 사이의 부조화가 발견된다. 기본소득 도입이 막대한 공공지출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 규모가 큰 북유럽과 서유럽 복지국가들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는 재정적 역량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과 관련해 가장 적극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들은 오히려 사회지출 규모가 크지 않은 동유럽 국가들이다.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된 이후 아직까지 충분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지 못했다고 느끼는 동유럽 시민들의 복지 욕구가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높은 지지율로 표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국가 재정 능력과 기본소득 지지율 사이의 불일치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는 데 상당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References

1 

Andersson J. O., Kangas O. E. (2007). Normative Foundations of the Welfare State. New York, NY: Routledge. KildalN., KuhnleS., Eds., pp. 124-141, Universalism in the age of workfare: attitudes to basic income in Sweden and Finland.

2 

Bay A. H., Pedersen A. W. (2006). The limits of social solidarity: Basic income, immigration and the legitimacy of the universal welfare state. Acta Sociologica, 49(4), 419-436.

3 

Esping-Andersen G. (1990). The three worlds of welfare capitalism.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4 

Geiser U. (2016). Basic income plan clearly rejected by Swiss voters. Retrieved from https://www.swissinfo.ch/eng/directdemocracy/vote-june-6_basic-income-plan-awaits-voters-verdict/42200378.

5 

Pfeifer M. (2009). Public opinion on state responsibility for minimum income protection: A comparison of 14 European countries. Acta Sociologica, 52(2), 117-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