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심리적 부검

Psychological Autopsy

1. 들어가며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의 세계건강관측소(Global Health Observatory: GHO)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8.3명으로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WHO, 2017).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1월 23일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2022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17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발표하고 최근 5년간의 자살자 전원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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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국가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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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WHO. (2017). “Crude suicide rates (per 100,000 population).”

2. 심리적 부검이란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란 정신과 전문가들이 자살자의 가족을 비롯한 지인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고 고인의 유서나 일기 등 개인적 기록과 병원 진료 기록 등을 분석해 자살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자살로 인한 사망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심리적 부검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여 사망의 구체적 원인과 심리 정황을 분석하면 자살이 실제로 사고사나 타살이 아닌 자살이었는지를 밝힐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심리적 부검이 적절하게 이뤄지면 향후 유가족의 죄책감이나 심리적 부담감을 경감시키는 상담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으며, 유가족 지원 사업과 자살예방정책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심리적 부검은 세계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 미국 뉴욕에서 경찰 93명이 연속으로 자살한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58년, 로스앤젤레스 검찰청 검시과의 한 수석 검시관이 원인 불명의 사망 사고가 자살인지 여부를 밝혀 달라고 로스앤젤레스 자살예방협회 전문가들에게 조사를 의뢰하게 되는데, 당시 의뢰를 받은 정신분석학자 에드윈 시나이드먼(Edwin S. Shneidman)이 처음으로 ‘심리적 부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핀란드, 호주, 서유럽 등을 중심으로 심리적 부검 연구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이스라엘, 대만, 인도, 중국, 홍콩 등 아시아 지역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3. 핀란드와 미국의 심리적 부검 제도

가. 핀란드

핀란드는 1986년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심리적 부검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핀란드는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30.3명에 달해 수년간 세계 자살률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1986년부터 5년 동안 전문가 6만 명을 동원해 1987년에 자살한 1397명 전원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시행했다(Statistics Finland, 2017). 심리적 부검 결과, 93%가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었고, 80% 정도는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중 단 15%의 사람만이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Partonen, 2016).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핀란드 정부는 자살예방 종합전략을 세우고, 1991년에는 정신질환 조기 발견 및 치료,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대대적인 자살예방 사업을 추진하였다. 덕분에 핀란드의 자살률은 2005년 인구 10만 명당 20명, 2015년 16.3명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WH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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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핀란드의 연도별 자살 사망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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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Findicator from Statistics Finland. (2017). Number of Suicides.

나. 미국

미국 질병관리본부(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는 타당성과 신뢰성을 갖춘 평가 도구 개발에 중점을 둔 새로운 심리적 부검 연구 방법을 개발하여 더욱 정확한 자살통계를 기반으로 자살률을 감소시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 수립 및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검시관, 통계학자, 공중보건전문가 등을 주축으로 ‘자살 판정 및 보고에 대한 실무위원회(Working Group on Determination and Reporting of Suicide)’를 운영하고, 그 결과 1988년, 심리적 부검 과정에 반드시 점검되어야 할 22개의 기준을 정립한 ‘자살 판정을 위한 조작적 기준(Operational Criteria for the Determination of Suicide)’을 개발하였다(Rosenberg et al., 1988). 자살 판정을 위한 조작적 기준은 미국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미국법의학회(American Academy of Forensic Sciences), 세계검시관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s of Coroners and Medican Examiners), 국립검시관학회(Naitonal Association of Medical Examiners), 국립보건통계센터(Natioanl Center for Health Statistics), 생체기록 및 보건통계학회(Association of Vital Records and Health Statistics) 등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되었는데, 이는 사망 사례들 중에서 자살 여부를 최대한 정확하게 감별하기 위하여 자살 통계의 타당성(validity)과 신뢰성(reliability)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다(Na, Paik, Yun, & Kim, 2015). 그로부터 3년 후, 33개의 항목이 추가된 ‘자살 판정을 위한 경험적 기준(Empirical Criteria for the Determination of Suicide)’이 개발되었는데, 심리적 부검자들이 이미 자살 또는 사고사가 판명된 126건에 대해 확인한 결과 자살에 대해서는 100%, 사고사에 대해서는 83%, 총 92%의 높은 예측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Jobes, Casey, Berman, & Wright, 2010).

심리적 부검은 미군 내에서도 군인들의 자살예방대책으로 널리 쓰인다. 미 공군은 지휘관의 적극적인 참여와 커뮤니티 전체의 참여, 면밀한 역학조사와 심리부검을 골자로 하는 자살예방 프로그램(Air Force Suicide Prevention Program)을 개발하여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해 왔다(Knox et al., 2010). 미 공군 자살예방 프로그램이 시행된 이후 1997~ 2002년에 미 공군의 자살률은 시행 전인 1990~1996년에 비해 33%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Knox et al., 2010).

4. 나가며

심리적 부검 등의 자살예방 프로그램은 이미 미국,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 자살을 줄이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난다. 요컨대, 핀란드는 심리적 부검 제도를 필두로 한 국가 주도형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시행해 자살률을 성공적으로 감소시킨 대표적인 나라이다. 중앙정부의 주도하에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학교, 직장 및 지역사회조직 등이 적극적으로 자살대책에 참여하는 환경과 제도가 조성되어 자살예방대책의 지속적인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핀란드가 심리적 부검으로 자살률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유가족을 비롯한 자살자 주변인들의 적극적 참여이다. 1987년의 자살자 유족 중 80%가 심리적 부검에 협조한 덕분에 1397건이나 되는 자살 사례를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자살을 터부시하고 숨기려는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유가족의 협조를 받기 어려워 심리적 부검이 시행되기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심리적 부검이 체계적이고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살 사망자의 유가족과 주변인들을 위한 배려와 지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망자의 유가족을 비롯한 정보 제공자가 적극적으로 심리적 부검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또한 경찰,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사회복지사 등 심리 상담에 대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유가족 사후 관리에도 능숙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면담팀을 구성하여 정보 제공자가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조사에 임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자살예방기관 및 의료기관 등을 연계시킨 인프라를 구축하고 심리적 부검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References

1 

Findicator from Statistics Finland. (2017). Number of Suicide. http://www.findikaattori.fi/en/10#_ga=2.63011311.1111253148.1517535708-943352905.1517535708에서 2018. 1. 31. 인출.

2 

Jobes D. A., Casey J. O., Berman A. L., Wright D. G. (1991). Empirical Criteria for the Determination of Suicide. Journal of Forensic Sciences, 36(1), 244-256.

3 

Knox K. L., Pflanz S., Talcott G. W., Campise R. L., Lavigne J. E., Bajorska A., et al. (2010). The US Air Force Suicide Prevention Program: Implications for Public Health Policy.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0(12), 2457-2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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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K., Paik J. W., Yun M. K., Kim H. (2015). Pyschological autopsy: Review and Considerations for Future Directions in Korea. Journal of Korean Neuropsychiatric Association, 54(1), 40-48.

5 

Partonen T. (2016). 2 Suicide Prevention in Finland. Injury Prevention, 22(Suppl 2), A1.2-A1.

6 

Rosenberg M. L., Davidson L. E., Smith J. C., Berman A. L., Buzbee H., Gantner G., et al. (1988). Operational Criteria for the Determination of Suicide. Journal of Forensic Sciences, 33(6), 1445-1456.

7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7). Crude suicide rates (per 100,000 population). http://apps.who.int/gho/data/view.main.MHSUICIDEv?lang=en에서 2018. 1. 31. 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