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유세(wealth tax) 도입 논의에 관한 고찰

A Look at the US Wealth Tax Debate

Abstract

Tax policies in the modern welfare state are inextricably linked with social security policies. This is because tax policies not only provide the financial resources essential for implementing social security policies but also serve as a key mechanism for reducing market inequality. In any welfare capitalist society, however, a tax increase is a sensitive issue about which most political forces tend to remain discreet, especially in the US, where support for the market system is pervasive and firm. In the wake of the COVID-19 pandemic, however, US society and its political circles have begun to consider the prospect of a tax increase in earnest and in a concrete manner, in the context of which a buzzword on the rise is ‘wealth tax’. In this article, I examine the ongoing discussion in the US regarding the introduction of a wealth tax and consider how it will unfold in the months leading up to the November election. To do this, I revisit the concept of a wealth tax as it emerged from US policy history and offer an account of the socioeconomic background that has brought the introduction of a wealth tax into public discourse. I also discuss some of the main features of the wealth tax as proposed in various bills and consider whether, and with what significance, the wealth tax might be implemented.

초록

현대 복지국가에서 조세정책은 사회보장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사회보장정책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재원의 출처가 조세제도이기도 하거니와 조세정책은 그 자체로서 재분배를 통하여 시장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주요 기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자본주의에서 증세라는 이슈는 대부분의 정치세력에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영역이고, 특히 시장체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가 사회 저변에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미국 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증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부유세(wealth tax)’가 정책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미국 부유세 도입 논의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11월 대선과 맞물려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단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부유세의 개념과 미국의 정책사를 되짚어 보고, 현재 부유세 도입 논의가 촉발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알아본다. 아울러 현재 법안으로 구체화된 부유세 정책의 골자를 소개하고 향후 전망과 의미를 살펴본다.

1. 들어가며: 미국 대선과 부유세 도입 논의의 등장

매년 연초에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 Address)는 미국의 가장 비중 있는 정치 연례행사 중 하나로 꼽힌다.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사회적 논란이 되는 연방 정책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변론할 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 시간 남짓한 연설에 모든 분야의 각론들을 자세히 담아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사회적・외교적 주요 현안에 대한 행정부의 총체적 시각과 거시적 대응 방안이 포함되기 때문에 연두교서는 향후 연방 정책의 방향과 폭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재선을 앞둔’ 현직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더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기 마련인데 이는 대선에 임하는 대통령, 더 나아가 여당이 추구하는 정책 청사진이 고스란히 투영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3월 연두교서는 정책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공화당 대선후보가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결정된 시점에 발표된 이번 연두교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국내 정책 등에서 트럼프 진영과의 차별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증세와 관련된 부분이었다(Lawder, 2024; Svitek, 2024).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고착되며 연방 단위 선거에서 정책 논쟁의 중요성이 옅어졌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의 지난 주요 선거들을 되짚어 볼 때 정책은 여전히 선거 결과에 의미 있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임을 알 수 있다. 일례로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바이든 캠페인과 공화당-트럼프 캠페인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정책 확장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하였다. 결국 공화당의 제한적 지원 정책에 맞서 적극적 사회정책(아동수당 확대와 현금 지원 및 실업급여 연장 등)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바이든과 민주당은 당초의 불리한 지형을 뒤엎고 백악관과 의회를 탈환하였다. 그 이전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경쟁한 2016년 대선을 보더라도 당시 후발주자였던 트럼프 캠페인은 구조적 문제점이 불거진 ‘오바마 케어’의 전면 폐지라는 다소 과격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유력 주자였던 힐러리 상원의원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정책적 차별성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이번 11월 대선에서도 바이든과 트럼프 캠페인은 자기 진영을 결집하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몇몇 대표 정책들을 내세울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 가장 명확하게 대척점을 이룰 것으로 예견되는 분야가 바로 조세정책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대 복지국가에서 조세정책은 사회보장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사회보장정책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재원의 출처가 조세 제도이기도 하거니와 조세정책은 그 자체로서 재분배를 통하여 시장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주요 기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Ruane et al., 2020; Streeter, 2022). 따라서 증세로 뒷받침되지 않는 사회보장 또는 복지국가의 확대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복지자본주의에서 증세라는 이슈는 대부분의 정치세력에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영역이고, 특히 시장체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가 사회 저변에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이전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전통적 정책 기조에서 볼 수 있듯 ‘감세’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가 미국 사회의 큰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미국 사회에서 이런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주정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중앙 정치무대에서도 증세에 대한 구체적 주장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무렵 등장한 핵심 의제가 ‘부유세’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미국에서 정치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부유세 정책의 내용을 살펴보고 11월 대선과 맞물려 어떠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될지 예단해 보고자 한다.

2. 부유세(wealth tax)의 개념과 미국의 부유세 역사

부유세의 정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보편적으로 “개인 또는 가구가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net worth)에서 면제 기준액(exemption threshold)을 초과하는 금액에 부과되는 연간 세금”을 의미한다(Tax Policy Center, 2024). 따라서 세금 적용의 대상이 되는 총자산(total assets)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범위 즉 면세 기준액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따라 다양한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세 기준액을 100만 달러로 설정하고 세율을 2%로 정할 경우, 순자산이 500만 달러인 가구의 경우 면세 기준액을 제외한 400만 달러에 2%의 세율이 적용되어 8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는 방식이다. 이때 자산의 범위를 좁게 인정하여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과 예금 정도로만 한정할 수도 있고, 보다 넓게 적용하여 해당 연도에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자산과 귀중품(luxury goods)이나 가보(family heirlooms) 같은 비금융자산까지 모두 포함할 수도 있다.

부유세 지지론자들은 부유세가 부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일반 대중이 아닌 극히 일부(주로 부유층)에게만 징세를 집중할 수 있어 효율적이고 개혁적인 세수 증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소득과 달리 자산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복잡하므로 현실적으로 부유세를 시행하기 어렵고, 탈세의 규모가 커질 수 있어 조세 형평성을 저하시킨다는 점을 들어 반대한다. 2022년 기준 포괄적인 의미에서 부유세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8개국(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이탈리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정도인데 이는 1990년 대 12개국보다 줄어든 수치이다(State of Washington, 2023). 현재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주정부에서도 본격적인 부유세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포괄적인 부유세 시스템의 기원은 19세기 중반에 도입된 미국의 종합재산세(GPT: The US General Property Tax)라 할 수 있다. GPT 도입 이전까지 미국의 주요 조세정책은 영국의 제도를 답습한 토지세(Land Tax)였다. GPT가 기존의 토지세와 차별화되는 점은 토지뿐만 아니라 개인 및 가구가 보유한 ‘모든 유형의 자산’에 세금을 적용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특징으로 말미암아 GPT는 근대적 형태의 조세 제도로서 최초의 부유세로 여겨진다(Dray et al., 2023).

GPT는 20세기 초반까지 90여년간 미국 조세정책의 근간을 이루었으나 1930년대 뉴딜정책의 등장과 함께 연방 정부의 역할과 재정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며 다른 형태의 조세제도로 대체된다. 이때부터 연방 정부의 주 조세 재원은 소득세(income tax)와 판매세(sale tax)로 전환되고 GPT는 점차 축소되어 주택과 토지 등 부동산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토지세의 형태로 회귀한다. 그리고 GPT의 징세 주체는 여전히 지방정부에 남아 오늘날까지 지방정부의 주요 세수원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뉴딜을 통한 복지국가의 출현이 미국에서 부유세의 쇠퇴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물론 ‘1935년 조세법(Revenue Act of 1935)’을 통해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는 누진적 성격을 강화한 소득세 제도를 통하여 고소득에 대해 추가적 세금을 부과하는 또 다른 형태의 부유세를 도입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35년 조세법은 ‘자산’을 징세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의 부유세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부유세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미국의 복지국가 확대기라는 갈림길에서 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미 정치권의 핵심 논제로 부상한 것이다.

3. 부유세 도입 논의의 배경: 두 가지 여건

앞서 본 바와 같이 부유세의 범위는 정책의 형태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다. 19세기에 도입된 미국의 GPT는 자산에 세금을 부과하였다는 점에서 부유세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징세 대상이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주민들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부유세와는 결이 다르다. 다음 절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부유세 논의의 방점은 극소수에 해당하는 초부유층(super rich)에게 현재의 조세체계로는 부담시킬 수 없는 추가적인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미국에서 이러한 형태의 부유세 도입 논의가 등장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재 미국에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 즉 부유세 도입의 여건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크게 다음의 두 대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먼저 경제적 양극화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1970년 미국 중산층 가정의 실질 중위 소득은 구매력을 고려하여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7만 6000달러였다. 그런데 2022년 중산층의 실질 중위 소득은 7만 2000달러로 지난 50년간 오히려 중산층 가정의 실질 소득이 4000달러나 감소하였다(Fisher, 2024). 반면 초고소득층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 들의 임금 상승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50년간 미국 350대 기업의 임금 추이를 분석한 보고서(Bivens & Kandra, 2022)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20년까지 이들 기업 평균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상승률이 18%로 사실상 정체에 가까웠던 반면 최고경영자들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1500%에 육박하였다. 그 결과 ‘경영자와 평균 임금노동자의 임금 비율(ratio of CEO-to-typical-worker compensation)’이 1968년 20대 1이던 것에서 2021년 400대 1로 대폭 확대되었다.

이에 더하여 경제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또 다른 축인 자산 차이(wealth gap)에서도 양극화의 심화를 볼 수 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자산 상위 10%의 가구가 미국 전체 자산의 약 70%를 점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Kent & Ricketts, 2024).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축적되는 자산의 차이는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정도와 추이이다. 미국에서 자산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07년 경기침체 이후이다.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분석(Horowitz et al., 2020)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자산 상위 5분위 가구의 순자산 중위값은 13% 증가한 120 만 달러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그 이외 모든 계층에 속하는 가정의 순자산은 이 기간 오히려 대폭 감소하여 최대 감소폭을 보인 하위 2분위 계층의 경우 32만 달러에서 19만 달러로 39%의 자산 축소가 발생하였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부의 편중은 한층 심화되었는데 ‘조세 공정성을 위한 미국인(Americans for Tax Fairness)’이라는 독립 기관이 포브스(Forbes)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채 일 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미국 억만장자(billionaires) 단 700여 명의 재산이 2조 달러(약 2800조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Luhby, 2021). 이는 당해 연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규모이다.

나. 연방재정 적자의 악화

두 번째로 주목할 지점은 연방 정부의 부채 증가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20세기 후반 이래 미국의 부채 문제는 항상 정치사회적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역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그 문제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하여 미국 재정 집행의 역사를 통시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건국 초기 대륙 의회(Continental Congress)에서 발행한 독립전쟁 부채로 인해 채무 불이행이 발생한다. 초대 재무 장관으로 임명된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을 설립하고 미결제로 남은 각 주 및 연방 부채를 통합하는데 이러한 조치를 통해 연방 부채 부담은 당시 GDP의 30%에 머무르게 된다. 또한 일명 해밀턴주의(Hamiltonian principles)라고 명명된 재정 원칙을 도입하는데 연방 부채는 주로 비상사태, 특히 외국과의 전쟁과 관련된 위기 해결을 위해 발행되어야 하며, 평화로운 시기에는 부채 부담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Walker & Higgins, 2024).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미 연방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 신용의 무결성을 지키기 위해 해밀턴 주의 원칙을 대체로 고수했다. 이러한 원칙 덕분에 미 정부는 우수한 신용 상태를 장기간 유지 할 수 있었고 이는 위기 상황에서 연방 정부에 충분한 대출 여력을 제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1812년 전쟁, 남북전쟁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정부는 엄청난 재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처음 세 차례의 전쟁 이후 미 연방 정부는 재정 규율을 곧 회복하고 수년 동안 흑자를 기록하여 부채를 상환하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연방정부가 예산 적자를 지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률이 부채 증가율을 압도하며 부채-GDP 비율(debt-GDP ratio)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Walker & Higgins, 2024). 즉 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밀턴 원칙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미 연방정부는 일상적으로 대규모 적자를 유지하며 대신 경제 성장으로 부채의 상대적 규모를 ‘녹이는(상환하는 것이 아닌)’ 전략을 유지해 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부채 증가율을 앞서는 꾸준한 경제 성장과 예상치 못한 부채의 대규모 증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2007년 경기침체를 거치며 성장률이 둔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전시에 준하는 대규모의 부채가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전 트럼프 행정부에서 단행된 2017년 감세 정책은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 규모를 키웠고 이는 고스란히 부채로 전이되었다. 그 결과 2023년 말 기준 미국 연방 부채는 34조 달러(약 4경 7000조 원)를 초과하여 부채-GDP 비율이 드디어 100%에 육박하였다(Sheiner & Conner, 2023). 2022년 이후 미국 부채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가 여러 경로에서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는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면서 미국 재정 건전성에 대한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Pringle, 2024). 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현재 연방 정부의 부채 규모를 ‘지속 불가능한(unsustainable)’ 수준으로 진단하며 이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Burns & Giorno, 2024). 더군다나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재정 모형(PWBM: Penn Wharton Budget Model)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현 부채 상황이 개입없이 진행될 경우 20년 후에는 미국 정부가 채무 불이행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였다(PWBM, 2023).

4. 부유세 도입의 현황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미국에서 부유세 도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는 것은 분배정의 관점에서의 ‘당위성’과 재정위기 해소에 대한 ‘절박감’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부의 편중과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임계치를 넘어섰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한편으로 경제 성장만으로는 더 이상 누적되는 재정 적자와 그로 인한 부채의 증가를 감당할 수 없기에 정부 세수(revenue) 규모 자체를 확대해야 하는 현실에 당면한 것이다. 그리고 두 측면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부유세가 대두된 것이다. 주정부는 미국 민주주의의 실험실(laboratory of democracy)이라는 말이 있듯 부유세 정책도 전통적 민주당 지지주에서 먼저 구체화되고 있다. 연방 차원에서 법으로 제정되기 위해서 양원과 백악관이라는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초 7개 주(캘리포니아, 코네티컷, 하와이, 일리노이, 메릴랜드, 뉴욕, 워싱턴)의 민주당 출신 주의회 의원들이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각 주에서 법안을 발의하기로 조율하였다. 주 의원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향후 연방 정책의 시험 사례로 시도하는 한편, 세금이 낮은 인근 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의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이다(Weil, 2024).

이들 중 현재 법안이 완성되어 의회를 통과한 것은 캘리포니아주뿐이다. 캘리포니아주의 부유세안은 주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지난 연말 발의했으며, 680억 달러(약 95조 원)의 주정부 예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세수를 모색하던 가운데 주정부 지출 억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된 것이다. 이 법안은 이번 과세 연도부터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초과하는 모든 캘리포니아 거주자의 전 세계 순자산에 대해 연간 1.5%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2026년 1월 1일부터 캘리포니아주는 5000만 달러(약 700억 원)를 초과하는 자산에 대해 매년 1%의 세율을 적용하고,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에 대해서는 0.5%의 세금을 추가로 부과할 예정이다. 부분 거주자(part-time residents)는 연간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일수에 따른 비율을 적용하여 세금이 부과된다. 캘리포니아주의 부유세는 금융자산(예적금, 일반 주식, 법인의 파트너십 지분(shares in a partnership)이나 사모펀드 지분 등을 포함)과 예술품 및 해외에 보유한 자산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형태의 자산에 적용된다(Wealth Tax: False Claims Act, 2024).

공개적으로 거래되지 않는 자산의 가치 평가는 현재 주 법인세 및 소득세를 관장하는 캘리포니아 프랜차이즈 세금 위원회(California’s Franchise Tax Board)에서 맡게 된다. 즉 주 외부에 위치한 개인 사업체는 위원회에서 파견한 감사관 및 감정인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부동산에 대한 세금은 면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혜택은 부유층이 더 많은 투자를 부동산으로 옮기도록 부추길 수 있으며 동시에 고가의 부동산을 소유한 거주자들이 주를 떠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이번 부유세안에 따르면 주에서 부의 이탈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약 216억 달러(약 30조 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The Editorial Board, 2024). 하지만 이는 이번 회계연도 캘리포니아의 예산 적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다.

한편 연방 차원에서도 지난 3월 의미 있는 법안이 발의되었는데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주도하여 상하원에서 동시 발의된 부유세안 일명 ‘초백만장자 세금법안(Ultra-Millionaire Tax Act)’이 그것이다(Ultra-Millionaire Tax Act of 2024, 2024). 가장 부유한 미국인의 순자산에 세금을 부과하여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으로 부유세의 전형을 보여주는 안이다. 워런안은 순자산이 5000만 달러(약 700억 원) 이상인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며 제안된 세율은 5000만 달러 초과분에 대해서는 연 2%, 그리고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초과하는 경우 연 3%를 적용한다. 순자산에는 주식, 부동산 및 기타 투자와 같은 모든 자산에서 주택담보대출 (모기지)이나 학자금 대출 등 부채를 제외한 금액이 포함된다. 이 법안은 초고액 자산가들이 매년 국세청(IRS)에 순자산을 자진 신고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시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규정 준수를 보장하기 위한 IRS의 집행 및 감사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또한 부유세에서 발생하는 세수는 보편적 보육, 저렴한 주택, 학자금 부채 탕감 등 다양한 정부 프로그램과 사회정책에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워런은 이 세금이 사회 및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재정적으로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5. 나가며: 전망과 의미

현재로서는 캘리포니아주의 보유세안이나 워런안 모두 법률로 제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먼저 캘리포니아 보유세안은 주의회를 통과한 상태지만 역시 같은 민주당 출신인 개빈 뉴섬 주지사의 거부권에 가로막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진보적 사회정책 법안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것과 달리 뉴섬 주지사는 유독 부유세에 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 왔다(White, 2024). 뉴섬은 부유세가 실행될 경우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부자들이 타 주로 이주하여 장기적으로 세수 감소를 유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연방 차원에서 워런안의 경우 일단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트럼프 진영과 공화당에서는 현재 메디케어와 한국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의 축소를 통해 연방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이전 트럼프 행정부에서 집행된 감세 조치를 영구화하려는 마당(TCJA Permanency Act, 2023)에 증세의 일종인 부유세를 찬성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당 내에서도 증세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들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줄곧 부자 증세를 주장해 오고 있지만 한 번도 부유세를 언급한 적은 없다. 대신 현재의 법인세를 인상하고 과표구간의 재설정과 추가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소득세를 획기적으로 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The White House, 2024). 하지만 소득세법 개정만으로는 문제가 더 심각한 자산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자본 이득은 과세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구조이다. 왜냐하면 자산 소유자의 생애 동안 자산을 매각할 때까지 세금이 이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자가 사망할 때까지 자산을 보유하면 그 시점의 시장 가치로 기준이 재설정되고 상속인은 원래 소유자가 자산을 구매한 시점과 사망 시점 사이에 발생한 자본 이득에 대해 세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는다. 현 조세제도의 이런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유 중인 자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부유세가 필수적인 이유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미국에서 등장한 유명한 정치 구호 중 하나는 “부자에게 세금을(Tax the rich)”이다. 초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이제 지지 정당이나 이념적 선호에 관계없이 다수의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Davison, 2024). 뿐만 아니라 정작 부자 증세가 실현될 경우 추가적인 세금 납부의 주체가 될 초부유층 사이에서도 부자 증세에 대한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인 빌 게이츠는 이미 수년 전부터 초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역설해 오고 있으며(Mann, 2023) 최근에는 월가에서 가장 신망받는 경영인 중 하나인 JP모건 체이스 그룹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도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Nagpaul, 2024). 이제 미국에서 증세는 더 이상 일부 진보 진영에 국한된 의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복지자본주의를 위해 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할 의제라는 사실의 방증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11월 대선을 준비하며 민주당과 바이든이 증세를 최우선 정책 중 하나로 내세울 것이라는 데 반론의 여지는 없다. 다만 당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또 공화당과의 향후 원내 협상을 고려할 때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지금의 여론과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11월 선거에서 바이든이 백악관을 수성하고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할 경우 부유세를 포함한 증세 정책의 도입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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