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과거사 배상 정책에 대한 논의: 캘리포니아주 사례를 중심으로

Policy Discussion of Reparations for Black Americans in the U.S. : A California Case

1. 들어가며

2020년 5월 코로나19 세계적유행으로 사회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검문 과정 중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 저변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인종주의(racism)에 대한 사회적 각성과 조직적 저항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일명 BLM)’라고 명명된 일련의 사회운동은 공권력의 흑인 차별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인종적 정의(racial justice)’를 미국 사회의 화두로 자리 잡게 하였다(Burch et al., 2021). 이제 미국에서 인종문제의 초점은 단순히 흑백 갈등의 해소나 소수자(minorities) 보호라는 다분히 현상적 수준의 논의를 넘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iversity-Equity-Inclusion, 일명 DEI)의 확장을 통한 사회정의(social justice)의 실현이라는 본질적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캘리포니아주는 2020년 과거사 배상 특별위원회(California Reparations Task Force)를 구성하였고 3년여간의 조사와 논의를 거쳐 지난 5월 최종 권고안을 확정하고 이를 주 의회에 정식으로 상정하였다. 권고안은 과거 제도적 인종주의(institutional racism)와 구조적 억압(systematic oppression)으로 피해를 입은 흑인과 그 후손들에게 ‘금전적 배상(monetary reparations)’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며 만약 이 권고안이 입법화될 경우 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과거사 배상 정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캘리포니아주의 이번 권고안은 비슷한 형태의 배상 정책을 계획하고 있는 다른 지방정부들에 준거틀이 될 뿐만 아니라 연방정부 차원에서 배상 정책 논의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미국의 인종문제 및 사회정의 담론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캘리포니아주 배상 정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 함의를 짚어 본다.

2. 구조적 인종 불평등, 흑인, 그리고 배상

배상(reparations)은 한마디로 ‘심각한 부정의에 대한 체계적 구제(system of redress for egregious injustices)’를 말한다. 따라서 배상이 성립하기 위한 선행 조건은 특정 대상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처우’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몇 차례의 배상 정책이 시행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s)에 대한 배상으로 이는 미국 건국의 선조들이라 할 수 있는 백인들에 의한 ‘강제적 토지 몰수 및 약탈’에 대한 보상적 성격을 지닌다. 이에 대한 배상으로 미국 원주민 후손들은 20세기에 들어와 토지와 현금 그리고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받았다. 또 다른 예는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집단 거주지에 강제 수용 되었던 일본계 미국인(Japanese Americans)들에 대한 배상이었다. 전후에 이들은 ‘강제 수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5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연방정부로부터 수령한다(Ray & Perry, 2020).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역사상 정부의 승인 아래 가장 광범위하게 그리고 오랜 기간 자행된 부조리에 대한 배상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원죄와도 같은 노예제와 이후 지속된 명시적 또는 암시적 인종차별(explicit and implicit racial discrimination) 정책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착취와 억압의 피해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s), 즉 흑인이었다. 물론 흑인들에 대한 배상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북전쟁(Civil War) 직후 전쟁 영웅 월리엄 셔먼을 비롯한 북부(Union) 지도자들은 노예였던 모든 흑인들에게 ‘40에이커의 땅과 노새 한 마리를 배상한다(일명 40 Acers and a Mule)’는 혁명적 원칙(이것이 Field Order 15이다.)을 공표한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집권한 앤드루 존슨 행정부는 이를 무효화하고 오히려 노예제 폐지로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백인 노예주(White slave owners)에 대한 배상에 집중한다(Ray & Perry, 2020).

흑인들은 노예제에 대한 배상을 전혀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교육, 의료, 주거, 비즈니스 등에서 주정부 또는 연방정부로부터 각종 제도적 차별과 배제를 당한다.1) 그리고 이러한 분리정책(racial segregation)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였던 대다수 흑인들의 상황과 맞물려 ‘인종에 의거한 경제적 불평등(racial economic disparity)’이라는 미국의 독특한 사회문제를 양산하게 된다(Darity, Mullen, & Hubbard, 2023). 더욱이 이러한 문제는 몇 세대를 거치며 계속 누적되었고 미국 복지국가의 발달 과정에서 인종에 의거한 ‘사회적 계층화(social stratification)’의 재생산이라는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였다(Brown, 1999). ‘정책의 인종(차별)화(racialization of policy)’와 그로 인한 ‘인종 불평등의 고착화(sedimentation of racial inequality)’는 오늘날 흑백 간의 여러 경제적 격차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특히 부(wealth)의 경우 흑인의 평균 부 규모는 백인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Oliver & Shapiro, 2006).

3. 캘리포니아주의 배상 권고안

앞서 살펴본 대로 오늘날 미국 흑인들이 겪는 경제적 취약성은 상당 부분 인종 불평등이라는 역사적・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단적인 예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 구조적 인종 불평등이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 흑인 가구들은 현재 수준의 다섯 배가 넘는 부(wealth)를 축적할 수 있었을 것이라 예측하였다(Aladangady & Forde, 2021). 즉, 과거 인종 불평등과 그로 인한 기회 박탈이 현재의 흑인들에게까지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적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며 바로 이 지점이 흑인에 대한 배상 논의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방정부 또는 주정부의 불평등 정책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은 흑인에게 정부에서 직접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었다(Darity & Mullen, 2020).

이번 캘리포니아주의 배상 권고안은 민간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최초의 흑인 배상안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캘리포니아주 배상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과거 캘리포니아 주정부 내에서 시행되었던 모든 인종차별 정책들을 포괄적으로 망라하였다. 여기에는 흑인 거주 지역에 주택 담보 대출을 제한하였던 차별적 주택 정책(일명 redlining policy) 등 명시적인 차별을 포함하여 흑인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공권력 과잉 사용(overpolicing)과 의료 서비스 접근 제한 등 암시적 차별까지 포함된다. 다음으로 이와 같은 차별 정책 또는 관행이 자행되었던 시기를 명시하고 그로 인해 흑인 1인이 받은 피해의 정도를 현재의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였다. 예를 들어, 권고안에 따르면 흑인에 대한 공권력 과잉 사용은 1971년부터 2020년까지 49년간 지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해당 기간 흑인 1명당 1년에 2천3백여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적시하였다(Elbeshbishi, 2023). 이런 방식으로 각 차별 행위별로 시행 기간과 피해액을 따로 추산한 것이다.

이와 같은 권고안대로 정책을 집행할 경우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생을 살아온 현재 71세2) 노인의 경우 대부분의 차별 정책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최대 12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Bailey & Collins, 2023). 또한 여기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대목은 배상의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위원회 내에서는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였던 모든 흑인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들 중 노예의 자손(descents of enslaved)임을 증명할 수 있는 흑인으로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종 권고안에서는 미국에서 노예로 살았던 흑인의 후손 또는 ‘1900년 이전에 미국에 거주한 자유 흑인’의 자손으로 자격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Felton, 2023). 아직 후속 보고서가 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근거에서 이와 같은 결정이 도출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총배상액과 관련하여 현실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수급 자격을 그렇게 제한하더라도 배상 정책에 8천억 달러(약 1,000조 원)3)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Reed, 2023).

4. 나가며: 배상 권고안의 전망과 함의

캘리포니아주의 배상 권고안은 적지 않은 정치・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는데 일단 그 내용이 배상의 규모에서 볼 수 있듯 매우 급진적이다. 권고안이 발표된 직후 특별위원회까지 조직하며 과거사 배상에 적극성을 보였던 캘리포니아 주지사마저 원론적 수준의 지지를 표명할 뿐 권고안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White, 2023). 이는 권고안이 실제로 입법화되어 실행되는 데에 많은 정치적 걸림돌이 있을 것임을 말해 주는 방증이다. 더군다나 미국 전체의 여론을 보더라도 과거 차별로 피해를 당한 흑인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나 ‘현금 배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Fung, 2023). 아울러 인종차별의 또 다른 피해자이며 흑인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히스패닉이나 아시안계 미국인과의 형평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할 때 캘리포니아주의 배상 권고안이 원안대로 정책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권고안은 미국의 인종문제 이슈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먼저 과거 인종차별로 발생한 피해를 총체적이며 동시에 구체적으로 계량화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것이다. 물론 개별 사건에 대해 이와 같은 접근을 통해 실제 배상을 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4) 하지만 이번 권고안은 인종차별적인 정책과 관행들을 모두 아우르며 각각의 피해 규모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였고, 인종차별의 경제적 피해가 얼마나 막대한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캘리포니아주에서만, 그것도 배상 대상을 제한하여도 그 추정 피해액이 1,000조 원을 넘어선다. 만약 이와 같은 기준을 미 전역으로 확대한다면 그 총액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구조화된 차별과 억압이 유발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인종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폭을 넓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종문제는 현재의 차별 철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반면 이번 권고안은 미해결로 남아 있던 과거의 인종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그로 인한 피해 보상에 방점을 찍음으로 ‘회복적 정의’를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권고안은 미국 인종문제 논의의 진화 과정에서 ‘임계 지점(critical juncture)’이라 할 수 있다.

Notes

1)

특히 여러 주정부들에서 1960년대까지 시행하였던 ‘합법적’ 인종차별・분리 정책들을 통틀어 짐 크로(Jim Crow)라 부른다. Packard (2002)는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

71세는 캘리포니아주 거주 흑인의 현재 기대수명이다.

3)

이는 캘리포니아주 1년 예산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4)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는 19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교정시설에서 자행된, 동의 없는 불임 시술에 대하여 600여 명의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였다(Office of Gavin Newsom, 2021).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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