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을 위한 독일의 사회보장제도

The Social Security System in Germany for Patients’ Autonomy at the End of Life

1. 들어가며

노인인구 증가와 더불어 독일의 연간 사망자수는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망률을 예측한 Simon, Gomes, Koeskeroglu, Higginson, and Bausewein(2012)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50년까지 연간 사망자 수는 854,544명에서 1,077,000명으로 약 26%가 증가할 것이며, 해당 기간 동안 병원에서의 사망뿐만 아니라 병원 밖 사망의 절대적인 수가 모두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인구변화에 기인한 것 외에도 코로나19 세계적유행(팬데믹)을 겪으며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존엄한 죽음의 개념이 재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부 연구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죽음 불안을 한시적으로 상승시켰으며 개인으로 하여금 이전에 비해 죽음 준비에 대해 더 고민하게 했음을 보고했다(Kim-Knauss, Lang, Rupprecht, Martin, & Fung, 2022; Rupprecht, Martin, Kamin, & Lang, 2022). 이처럼 독일에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도 생애말 돌봄 혹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정책적, 제도적, 학문적으로도 다양한 논의를 낳고 있다.

실제 많은 이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보내기를 바란다. 독일에서 행한 Lang, Baltes, and Wagner(2007)의 연구에 따르면 약 75%의 응답자들이 그 점에 동의했으며 생애말 연명보다는 더 높은 삶의 질을 선호한다고 보고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와 같은 인근 국가들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죽음 관련 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독일의 입장은 역사적, 종교적 이유로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축에 속한다(Cohen et al., 2006). 그러나 존엄한 죽음에 대한 수요와 이에 따른 사회제도적 대응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으며, 이에 이 글에서는 그와 관련한 독일의 최신 동향에 대해 소개한다.

2. 독일의 생애말 결정 관련 제도의 변화

1994년 독일 연방대법원(Bundesgerichtshof)은 생애말 결정과 관련된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말기 환자가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더라도 연명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환자 자율성의 원칙을 확인하고 생애말 결정에 대한 후속 논의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생애말 결정으로 언급되는 수동적 안락사, 간접적 안락사, 조력자살(Emanuel, 1994)에 대한 독일의 제도 변화와 논의들에 대해 살펴본다. 첫째로, ‘수동적 안락사’는 환자의 요청에 따라 또는 생명 연장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연명치료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이와 관련해 사전에 본인의 선택을 명시할 수 있는 제도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Patientenverfügung) 및 의료결정 대리인 지정(Vorsorgevollmacht)의 최근 동향을 살펴본다. 둘째로, 통증과 증상의 완화 및 전인적 돌봄에 집중하지만 궁극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단축할 수 있는 호스피스 완화의료(Hospiz- und Palliativversorgung)는 ‘간접적 안락사’에 해당되는데, 이와 관련해 독일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본격적으로 확장된 법적 근거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명시적 요청에 따라 의료전문가가 환자의 자살을 돕는 ‘조력자살(Suizidbeihilfe)’에 관한 제도적 논쟁과 최근 판결에 대해 간략히 논한다.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안락사는 제한적으로만 논의되고 있고 관련 제도의 변화가 보고된 바 없어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의료결정 대리인 지정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2009년부터 시행된 ‘환자자기결정법(Patientenverfügungsgesetz)’이며, 이는 공식적으로 제 3차 성년후견법 개정을 뜻한다(Drittes Gesetz zur Änderung des Betreuungsrechts). 해당 개정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의료결정 대리인 지정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게 될 경우 의료 치료에 관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 환자의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민간 제공자를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의료결정 대리인 지정을 작성하여 공증하는 방법도 있고, 연방법무부 관할의 중앙의료서비스등록부(Zentrales Vorsorgeregister)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의료결정 대리인을 공식적으로 등록할 수도 있다. 2023년 현재까지 530만 건 이상이 해당 등록부에 등록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2023년 1월 1일부터는 의료인이 중앙의료서비스등록부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응급 상황에서 환자의 의사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최근의 변화로는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긴급대리인권리(Notvertretungsrecht)를 들 수 있다(Bundesminis-terium der Justiz, 2022).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사전에 의료결정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가족이나 친지가 스스로 의료결정을 할 수 없는 환자를 대신해 의료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 2023년 1월부터는 배우자와 법적 파트너가 제도적으로 이러한 권리를 보장받게 되었는데, 이는 6개월이라는 제약된 기간 동안, 그리고 건강 및 의료에 관련된 결정들에 한정된다. 이는 결국 법원이 그 역할 지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여 논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가령 배우자 및 법적 파트너가 연명치료와 같은 중대한 결정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지 않더라도 대리인이 사전에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들의 역할이 법원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료결정 대리인의 사전 지정 및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할 수 있다. 특히 긴급대리인권리에 대한 이의 제기도 앞서 언급한 중앙의료서비스등록부에 함께 등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의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도모할 수 있다.

나. 호스피스 완화의료(Hospiz- und Palliativversorgung)

2016년 1월부터 시행된 ‘호스피스 완화의료법(Hospiz- und Palliativegesetz)’은 독일의 중증 환자들이 생애말에 더욱 집중적인 치료와 개별화된 지원을 받게 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해당 법안의 주요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법정건강보험 피보험자가 치료의 일부로서 완화의료를 받을 법적 권리를 명시했다. 이는 ‘사회보장법’ 5권 제27조 제1항 제2문(§ 27 Absatz 1 Satz 1 SGB V)을 인용한 “피보험자를 위한 완화치료도 질병치료의 일부이다(원문: Zur Krankenbehandlung gehört auch die palliative Versorgung der Versicherten.)”라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법’의 핵심 문장에 잘 나타난다. 이에 따라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건강보험 재정지원이 확대되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법’ 시행 이후로는 건강보험 기금에서 입원형 호스피스 비용의 90%가 아닌 95%를 부담하게 되었고 일일 최소 보조금도 2017년부터 267.65유로로 인상되었다(Bundesministerium für Gesundheit, 2017). 외래서비스의 경우 역시 재정지원이 더욱 확대되었는데, 완화의료 서비스 및 이에 상응하는 의사 및 간호 인력을 위한 추가 자금이 지원되며 외래완화의료 비용을 건강보험 기금에 직접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외래호스피스 자원봉사자에 대한 인건비 외에 출장비와 같은 재료비도 환급된다.

둘째, ‘호스피스 완화의료법’은 포괄적인 완화의료 제공을 위한 건강보험공단, 의사, 요양시설, 외래서비스 간의 네트워크 강화를 도모한다. 가령, 요양시설의 경우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해 의사 및 호스피스 기관과 협력계약을 체결하도록 권장되며, 이에 참여하는 계약 의사는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추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 지역에서의 전문외래완화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과 완화의료 제공 기관간 진료계약 중재 절차가 도입되었다.

마지막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의 정규화가 이루어졌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법’ 시행 이후 건강보험공단은 말기 환자에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해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개별적인 상담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입원 및 외래진료에서 임종간호가 법적으로 규정되었고, 이는 법정 장기요양보험의 간호 의무에도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병원 내외의 포괄적인 호스피스 완화의료 제공을 도모한다.

다. 조력자살(Suizidbeihilfe)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조력자살은 지난 십수 년간 제도적으로 많은 논쟁을 거쳐왔다. 스위스의 조력자살 기관인 디그니타스(Dignitas)에 따르면 서비스 가입자 및 사용자 모두 독일 국적자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보고해 이 주제에 대한 독일 내의 높은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Dignitas, 2022a; Dignitas, 2022b). 제도적 논쟁의 핵심 중 하나는 상업적 조력자살(geschäftsmäßige Suizidbeihilfe)을 허용해야 하는지와 관련된다. 먼저 2015년 독일 연방의회는 상업적 의도로 조력자살을 제공하는 행위를 범죄화하고, 이를 제공하는 협회, 조직 및 개인을 최대 3년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Deutscher Bundestag, 2015). 그러나 2017년 독일 연방대법원은 이기적인 동기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자율적으로 죽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판결은 상업적 조력자살 서비스가 ‘형법’ 제217조(§ 217 StGB)에 따라 여전히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20년에 독일 연방대법원은 2015년부터 시행되어 온 조력자살 금지조항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르면, 삶의 질과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이해에 따라 자신의 삶을 끝내기로 한 개인의 결정은 자율적 결정행위라는 것이며, 국가와 사회가 이러한 결정을 위해 제3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이용할 자유를 존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2023년 연방의회는 조력자살 이슈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Deutscher Bundestag, 2023). 발의된 법안들 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살펴보면, 먼저 사회민주당(SPD)의 라르스 카스텔루치 박사(Dr. Lars Castellucci)를 주축으로 하는 법안은 상업적 조력자살을 형법을 통해 다시 규제하는 안을 포함했다. 그러면서도 특정 상담 회기와 대기 기간을 충족하는 경우는 불법 행위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포함해 완전한 금지 조항보다는 유연한 접근을 취하였다. “형법이 답이 아니다”라며 더 진보적인 접근을 취하는 자유민주당(FDP)의 카트린 헬링-플라르(Katrin Helling-Plahr) 외 일부 의원들은 조력자살을 고려하고 있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되, 편견 없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 공인 상담 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제안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 외에도 조력자살에 대한 광고를 금지하는 조항, 요양원 등 시설 내에서의 조력자살을 금지하는 조항 등도 주된 쟁점에 포함되었다. 비록 앞서 언급한 법안들은 2023년 7월 기준 과반수 미달로 부결되었으나 조력자살은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대한 파급력을 내포한 이슈이기에 유사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 나가며

독일에서 존엄한 죽음을 둘러싼 법·제도적 조건은 상당한 진보를 보이고 있다. 자율성, 존엄성, 자기결정권에 대한 변화된 관점이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키고 법원 판결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사전연명의료 계획수립의 확대된 역할, 중앙정부의 통합적인 데이터 관리, 법정건강보험의 재정 지원 증가 등은 생애말 개인의 권리와 존엄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조력자살 이슈와 같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취약 계층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보장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존엄한 죽음을 위한 독일 사회 대응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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