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 대체에 실패한 트럼프케어: 미국 의료보험정책의 정치사회적 함의

Why did Trumpcare fail to beat Obamacare?: Political and social implications of US health insurance policy

초록

지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캠프는 의료보험 개혁의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한 정치적 상황에서 일명 트럼프케어로 불렸던 트럼프 행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안은 의회 통과가 유력시되었으나 지난 6개월간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좌초했다. 트럼프케어의 실패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거시적 맥락 속에서 최근의 의료보험 개혁 입법들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미국 의료보험정책이 어떠한 정치사회적 합의를 거쳐 오늘날 오바마케어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미국 의료보험정책의 방향을 예단해 보았다. 특히 본고는 과정 분석에 기반해 미국의 의료보험정책 형성 과정에서 다양한 정치사회적 주체들, 예컨대 정치세력, 행정부, 이익집단 등이 어떠한 선택과 상호작용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20세기 초반 점진적 변화의 시대부터 트럼프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의료보험제도사(史)의 주요 변곡점들을 되짚어 볼 때 타이밍, 정치적 보복, 그리고 외부 변수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의료보험정책의 성패를 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현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오바마케어가 트럼프 집권 기간 중에 폐지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 들어가며: 집권 초반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의제

지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캠프는 두 가지 국내 정책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하나는 반이민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보험 개혁,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오바마케어의 폐지라 할 수 있다. 반이민정책이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으로부터도 거센 비판을 받았던 데 반해 오바마케어 폐지를 골자로 하는 트럼프 식 의료보험 개혁안은 공화당 원내 지도부와 전국위원회(Republican National Convention)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오히려 선거 유세 종반에 빌 클린턴이 오바마케어를 비판한 발언1)은 오바마 유산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던 힐러리 클린턴을 수세에 몰리게 했다. 기실 오바마케어 시행 이후 보험료 인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산층을 반드시 끌어안고 가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서 오바마케어 논쟁은 결코 유리한 의제가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듯 힐러리는 대선 토론에서 오바마케어에 대한 명쾌한 정책 방향을 언급하는 대신 원론적 입장만 확인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이처럼 의료보험 개혁 이슈에서 트럼프 캠프는 명확한 입장으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먼저 추진한 이민 개혁은 의회의 문턱도 넘어 보지 못하고 행정명령(Executive order) 위헌 판결로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이는 반이민정책이 초당적으로 비판을 받아 왔기에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백악관 내에서도 이를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입은 내상은 그리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이민 개혁이 국정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면 본선은 이미 선거전에서부터 유리한 고지를 점했던 의료보험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개혁 실패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새로운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할 것을 천명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워싱턴의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그의 주장이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2. 최근 동향: 트럼프케어의 등장

반이민정책과 달리 의료보험 개혁은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파인 공화당의 지지를 받는 안건이라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비교적 부담 없이 정식 법안 형태로 의회에 상정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태어난 것이 트럼프케어2)이다. 트럼프케어 원안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오바마케어의 전 국민 의무 가입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다. 둘째, 메디케이드(Medicaid)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법안의 각론이 구체화되자 예상치 못한 반발이 여당인 공화당에서 제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케어 원안은 공화당 내 강경파와 온건파 양쪽 모두의 비판을 받았다. 전자는 트럼프케어가 오바마케어 폐지를 흉내만 내고 있다고 힐난한 데 반해 후자는 트럼프케어로 인해 무보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이유로 법안에 반대했다. 공화당이 하원에서 237석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3) 이러한 당내 노선 갈등으로 인해 3월에 예정되었던 하원 표결은 무산됐다.

이후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공화당 주도로 수정안이 나왔는데 이때부터 언론에서 트럼프케어라는 단어와 함께 ‘공화당 대체안들(GOP’s replacement plan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의료보험 개혁의 주도권이 백악관에서 의회로 넘어갔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1호 법안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법안 통과 자체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쏟아부었다. 결국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정치력에 힘입어 지난 5월 트럼프케어는 하원을 겨우 통과해 상원에 전달됐다. 하지만 상원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공화당이 52석이라는4) 간발의 차이로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법안에 반대를 표명하는 공화당 의원이 4명으로까지 늘어나면서 7월 표결 자체가 무산됐다. 이런 와중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케어의 통과는 유예하되 오바마케어만이라도 폐기(repeal)하도록 대체 법안을 상정하지만 공화당 의원 7명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이에 공화당 지도부는 고육책으로 오바마케어의 일부 조항만을 폐기하는 수정안(일명 Skinny repeal)을 상정하지만 이마저도 당내 의원 3명의 반대로 좌절됐다. 결국 오바마케어의 폐기와 트럼프케어의 도입이라는 공화당과 트럼프 행정부의 야심 찬 포부는 완전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3. 문제 제기: 트럼프케어는 왜 좌초했나?

앞서 언급한 트럼프 식 의료보험 개혁의 실패는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학계와 시민사회에도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트럼프케어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가?’에서 ‘트럼프케어는 왜 좌초됐고,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로 옮겨 가고 있다. 일부 언론을 비롯해 혹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부 공화당 의원의 개인적 앙금을 정책 입안이 실패한 주요 요인으로 지목한다. 실제로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밤중에 3,500㎞를 날아와 기어코 반대표를 행사해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선택은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 있음을 보여 준다.5) 그러나 트럼프케어가 하원과 상원에서 겪은 우여곡절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그리고 지난 4개월간의 여론 추이를 돌이켜 볼 때 트럼프케어의 좌초를 백악관과 공화당 일부 의원 간 갈등으로만 단순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보다는 내부에 숨겨진 본질적인 문제를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트럼프케어의 실패 원인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거시적 맥락 속에서 최근의 의료보험 개혁 입법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보는 것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특히 비슷한 정치적 상황에서 실패했던 클린턴 행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은 트럼프케어 실패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미국 의료보험정책이 어떤 정치사회적 합의를 거쳐 오늘날 오바마케어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미국 의료보험정책의 방향을 예단해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정책 분석의 방법에는 3P 분석6)으로 알려진 접근 방식이 있다.7) 미국 의료보험제도와 관련해 이미 많은 연구들이 정책 자체의 특성(누가 무엇을 어떻게 얻는가)을 연구하는 산출 분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정책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파악하는 효과분석 또한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다. 하지만 정책의 형성과 입안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역동성을 분석하는 과정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과정분석은 정책 형성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정치사회적 주체들, 예컨대 정치세력, 행정부, 이익집단 등이 어떤 선택과 상호작용을 통해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지를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8) 그렇기 때문에 미국 의료보험제도를 통찰할 때 과정분석은 이전 연구들이 간과했던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리라고 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과정분석을 통해 미국 의료보험제도사(史)의 주요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 그 속에서 정치사회적 함의를 찾고자 한다.

4. 미국 예외주의와 의료보험 논쟁의 서막

미국 사회의 본질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이다. 미국은 여타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과 달리 건국 초기부터 특유의 보수성을 기반으로 보수 가치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켜 왔다. 미국 예외주의의 특징은 시장경제에 대한 절대적 지지, 크고 강한 중앙정부(Federal government)에 대한 거부감, 청교도 정신에 기초한 강한 종교성 등으로 요약된다.9) 이러한 가치는 미국의 모든 공공정책에 속속들이 녹아들게 되는데 의료보험정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정치사에서 20세기 초반은 점진적 변화의 시대(Progressive era)로 규정된다. 이 시기는 공공복지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이 사회적 담론으로 등장하고 개혁주의자(Liberal reformer)의 활동이 본격화된 때로, 이 무렵부터 의료보험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10) 19세기까지만 해도 미국의 의료제도는 환자-의사 양자 관계에 기반해 철저히 사적 영역(Private sector)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독일의 공적 의료보험 도입을 목격한 당시 미국 개혁주의자들은 전미노동법협회(AALL: American Association for Labor Legislation)를 통해 국가의료보험 도입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AALL에 대항해 전미의사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가 전면에 등장했는데 이들은 국가의료보험이 도입되면 당시까지 의사들이 독점했던 진료와 의료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국가의료보험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11) 오늘날까지 팽배한 AMA의 국가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바로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AALL과 AMA가 의회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는 동안 의무적 의료보험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정치인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다. 더불어 전형적인 미국 예외주의, 즉 강력한 연방정부에 대한 불신과 친시장경제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적 의료보험을 도입하려던 시도는 결국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5. 뉴딜과 사적 의료보험의 태동

점진적 변화의 시대에서 실패를 경험한 개혁주의자들에게 대공황 이후 도래한 뉴딜 시대(New Deal era)는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위한 또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한다. 우선 193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레짐(Regime)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노동자에게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고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을 보장하는 경제제도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1935년에 제정된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은 노동자들에게 단체교섭권을 부여했다.12) 또한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방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과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주도의 사회보험 도입이 행정부와 의회 내에서 공론화됐다. 이와 같은 우호적 환경에서 AALL은 다시 한번 국가의료보험 도입을 시도하지만 복병을 만나게 된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의사들의 소득은 대폭 증가하고 사회적 영향력 또한 커졌다. 이에 AMA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확대됐는데 이들은 여전히 국가의료보험에 반대했다. 이때 AMA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이익집단이 의료보험 논쟁에 참여하게 됐는데 바로 전미병원협회(AHA: American Hospital Association)이다. AHA는 의료보험 도입에 대해 기본적으로 AMA보다 유연한 입장을 견지했는데, 이들은 의료보험 도입이 궁극적으로 병원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국가 또는 공적 영역에서가 아닌 비영리조직 또는 시장 영역에서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안을 발전시켰다. AHA의 주장은 병원, 의사, 보험회사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 후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AHA는 사적 의료보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블루크로스(Blue Cross) 모델을 탄생시켰다.13) 블루크로스의 성공은 사적 의료보험의 효과성을 증명하는 유효한 증거로 인식되었다. 한편 전국노동관계법의 제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던 노동조합들도 사적 의료보험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었는데 당시 미국의 양대 노조였던 전미노동연맹(AFL: American Federation of Labor)과 산업조직협의회(CIO: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의 리더들은 사적 의료보험을 단체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사용할 수 있는 유리한 카드로 인식했다. 아울러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이는 국가의료보험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당장 현실화할 수 있는 사적 의료보험제도를 지지하는 것이 노동자들을 동원하기에 더 유리하다는 노조의 전략적 판단도 이러한 입장 변화에 크게 작용했다.14) 의사, 병원, 사업자 그리고 노조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려 서구 민주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의료보험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미국식 사적 의료보험제도가 태동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1940년대에 들어 다시 한번 국가의료보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노조는 국가의료보험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국가의료보험에 대한 지지와 열기가 대단히 고무된 상황이라 이를 구현할 적기였다. 상원의원 2명(뉴욕과 몬태나주)과 하원의원 1명(미시간주)이 국가의료보험 도입을 위한 일련의 법안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바로 1940년대의 와그너-머리-딩겔 법안(Wagner-Murray-Dingell Bills)이다. 이 법안을 바탕으로 1948년 해리 트루먼 행정부는 국가의료보험법 시행을 위한 준비 법안을 인준한다. 하지만 반전은 의도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1940년대 말로 넘어가면서 미국 사회는 급격히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뒤덮이게 되고, 의회는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이게 됐다. 그러면서 국민의료보험 법안을 비롯한 모든 진보 정책은 의회와 행정부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됐다.15)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국민의료보험이라는 주제가 나올 때마다 ‘공산주의(The Red)’ 정책이라 치부하는 기저에는 1940년대 말 비이성적 매카시즘의 악습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루먼 행정부 이후 1990년대가 되기까지 국민의료보험 도입을 위한 유의미한 시도는 미 행정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물론 1960년대와 1980년대에 시민단체에 의해 또는 의회에서 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공식화된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케네디-존슨(Kennedy-Johnson) 행정부에서 보듯 의료보험 개혁보다는 메디케어나 메이케이드를 통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을 구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6. 빌 클린턴 행정부의 도전과 실패

뉴딜 시대를 기점으로 자리 잡은 미국의 사적 의료보험제도는 2010년 오바마케어가 통과되기까지 근 70년간 그 아성을 지켜 왔다. 오바마케어 시행 이전 미국의 보건의료제도는 크게 네 그룹의 시스템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사적 의료보험을 통해 의료 혜택을 받는 시스템으로 주로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가진 중산층 이상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연방정부 또는 주정부가 의료비의 상당 부분 또는 일정 부분을 감당하는 시스템으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계층 또는 은퇴한 노인층이 이 그룹에 속한다. 셋째는 현직 군인과 그 직계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시스템이고, 넷째는 퇴역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스템이다.16) 이 중 셋째와 넷째 시스템은 1950년대 이후 체계적으로 공고하게 발전해 왔는데 이는 군과 군인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애정을 유독 강조하는 미국 문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17) 1950년대 이후 언제나 정치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첫째와 둘째 시스템이다. 특히 1990년대 들어 미국은 의료체계 전반에 걸쳐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는 의료비의 급격한 상승이고 둘째는 의료보험 미가입자의 증가이다. 단적인 예로 60년대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6%였던 의료비는 90년대에 들어 14%로 상승했고, 의료보험 미가입자 또한 4,000만 명을 상회하게 됐다.18) 이러한 상황은 수면 아래 있던 의료보험 개혁이라는 의제를 다시금 미국 정치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1993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주자였던 빌 클린턴이 있었다.

1993년 대선에서 승리한 클린턴은 집권 후 가장 먼저 보건의료 개혁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500여 명 이상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부인 힐러리를 수장으로 지명했다.19) 보건의료 개혁 태스크포스는 빌 클린턴 대선 캠프의 공약들을 집대성해 미국 역사상 가장 복잡한 법안 중 하나로 꼽히는 의료보장법(HAS: Health Security Act)을 1993년 가을 의회에 제출한다. 세부 시행 규칙을 포함해 수급 자격, 급여 수준, 급여 항목, 보험금 수급 방식, 관리의료(Managed care) 등 1,300쪽에 이르는 수많은 내용을 담고 있던 이 방대한 법안의 핵심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전 국민 의료보험(Universal health insurance)을 도입해 미국 내 모든 합법적 거주자들이 의료보험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고, 다음은 국가의료이사회(The National Health Board)라는 연방 기구(Federal agency)를 신설해 보험료와 의료수가를 국가 주도하에 통제하는 것이었다.20)21)22) 1년여에 걸쳐 수많은 공청회와 상임위원회 토론, 그리고 원외에서의 거듭된 여론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HAS가 1994년 11월 상원에서 최종적으로 폐기됨으로써 클린턴 행정부의 보건의료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왜 클린턴 행정부의 보건의료 개혁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다음 세 가지 변수가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다.23)24) 먼저 클린턴 행정부는 민주당 내 반대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공화당과 AMA 등 관련 이익집단이 HAS에 반발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상됐던 바다. 문제는 당시 상하 양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해 법안을 자력으로 통과시킬 수 있었던 민주당에서 나온 반발이었다. 의료 개혁에 필요한 자원을 재정 적자를 통해 조달하고자 했던 행정부안에 많은 의원이 반대했다. 반면 더욱 급진적인 개혁을 원했던 진영에서는 법안이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발했다. 결국 백악관은 정치적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이다. 둘째, 클린턴 식 보건의료 개혁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았다는 것이다. 실례로 당시 보건의료 부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전미의료보험협회(HIAA: Health Insurance Association of America, 현 AHIP: America’s Health Insurance Plans의 전신)는 4,0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해리와 루이즈’라는 유명한 TV 광고 시리즈를 방영했다. ‘보건의료 개혁은 복잡하고 나쁜 것’이라는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이 광고는 의료 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켰다. 끝으로 대선 때부터 클린턴 캠프를 지지하던 노조와의 반목이다. 보건의료 개혁에 대한 논쟁이 최고조에 이른 1993년 12월 클린턴 행정부는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이행 법안에 서명했다. 이를 계기로 클린턴 행정부와 노조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보건의료 개혁에서 노조의 지지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40여 년 만에 시도됐던 의료보험 개혁은 다시금 좌절됐다.

7. 트럼프케어의 실패와 향후 전망

클린턴 행정부의 실패 이후 20여 년이 흐른 뒤, 의료보험 개혁을 위한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이다. 당시 정치적 상황은 1993년의 데자뷔였다. 2008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백악관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8석과 21석을 추가해 양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 의원들은 20세기 미국사에서 매우 개혁적인 입법 중 하나로 꼽히는 오바마케어를 통과시켰다. 20세기 초 개혁주의자들의 노력이 시작된 이래 100년이 흘러, 그리고 1984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제시 잭슨 후보가 의료보험 개혁의 기치를 내건 지 30년 만에 이룬 정치적 성과였다. 물론 오바마케어가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니다.25) 하지만 1930년대 이후 미국을 지배하던 사적 의료보험제도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만은 확실하다.26) 오바마케어가 통과된 이듬해에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상하원을 모두 되찾았다. 그리고 2008년 대선 때부터 돌풍을 일으켰던 극우노선 티파티(Tea party) 세력이 당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의회 권력을 장악한 공화당 강경파는 오바마케어 폐지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주도했고 오바마 행정부는 임기 내내 오바마케어를 방어하기 위해 정치력을 집중해야 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의회는 두 번에 걸쳐 오바마케어 폐기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때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의회에 거부권을 행사해 지켜 냈다. 그리고 2016년 기회는 다시금 공화당으로 넘어간다. 실로 40여 년 만에 백악관과 의회를 동시에 접수한 공화당은 오바마케어 폐기를 정책 1순위로 삼지만 서두에 설명한 대로 이에 실패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의 개혁은 실패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행정부의 실패는 클린턴 행정부의 실패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먼저 클린턴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당내 이견을 조율하지 못한 정치적 한계를 드러냈다. 현대 민주주의제도에서 모든 정책은 정치라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27) 특히 의료보험정책과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결부된 정책은 고도의 정치적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해 집권 초반 나타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력 부재는 법안 통과에 악재로 작용했다. 또 다른 원인은 여론의 지지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클린턴 행정부 때 HIAA의 다소 선동적인 광고가 클린턴 식 개혁의 반대 여론을 고조시켰다면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의회예산국(CBO: Congressional Budget Office)의 보고서가 반대 여론을 확대했다.28) 최초 트럼프케어 원안이 발표될 때부터, 또 하원과 상원에서 수정안을 제시할 때마다 CBO는 예상되는 비극적인 결과를29) 객관적인 수치로 발표해 여론 악화에 한몫했다. 미국 정계와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높은 신뢰성을 인정받는 CBO의 결과에 반박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예외였지만 말이다. 마지막 중요 요인은 오바마케어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 여겨진다. 정치경제학에서 경로의존성이란 어떤 정책이 일단 궤도에 오르면 그 정책을 변경하거나 폐지하려는 시도에 자기방어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볼 때 미국에서 의료보험 개혁은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특히 정부의 역할을 바라보는 양당(민주-공화)과 그 지지자 간의 근본적 차이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30) 실제로 오바마케어 이전의 연구들은 다수의 국민이 의료보험 실체에 대한 지식보다는 지지하는 정당의 입장에 따라 관련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31) 그런데 이번 트럼프케어의 실패 과정을 보면 그와 같은 공식이 무너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오바마케어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 30%에 미치지 못했고 공화당 상원 의원 7명은 오바마케어 폐지에 반대하는 쪽에 투표했다. 이는 오바마케어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 공화당 지지자와 정치인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6개월간 의료보험 개혁 논쟁의 가장 큰 교훈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제 오바마케어가 미국 사회에서 자생할 수 있는 정책임을 증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는 이제 무턱대고 오바마케어를 폐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자각했을 것이다. 특히 향후 미국의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최소 트럼프 집권 종반까지 행정부 주도로 획기적인 의료보험 개혁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대통령 선거라는 전국적 이슈가 없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은 무엇보다 여론이 자신의 정치적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32) 특히 오바마케어 폐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앞도적인 상황에서 공화당 반대파 의원들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출구 전략은 민주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오바마케어를 최대한 수정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다. 미국 의료보험정책사를 살펴볼 때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의료보험정책 또한 타이밍, 정치적 입장, 그리고 외부 변수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성패를 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겠다.

Notes

1)

미시간주의 한 유세 현장에서 클린턴은 오바마케어의 문제점과 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오바마케어는 정말 미친 것이다(it’s the craziest thing in the world)”라고 일갈했다.

2)

공식 명칭은 ‘AHCA: The American Health Care Act’이나 이 글에서는 ‘트럼프케어’로 통칭한다.

3)

법안 통과를 위한 하원 과반 의석수는 216석이다.

4)

실질적 상원 과반 의석수는 50석이다. 50:50 동률이 될 경우 공화당 출신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5)

지난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매케인의 정치적 자산인 베트남전 포로 생활을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해 둘의 갈등은 위험 수위를 한참 넘었다.

6)

3P: 과정(Process), 산출(Product), 효과(Performance)

7)

Caputp, R. K.(2013). Policy Analysis for Social Workers. Sage Publications.

8)

Gilbert, N. & Terrell, P.(2012). Dimensions of Social Welfare Policy. Pearson.

9)

Micklethwait, J. & Wooldridge, A.(2004). The Right Nation: Conservative Power in America. The Penguin Press.

10)

Stoken, D.(2004). The Great Game of Politics: Why We Elect Whom We Elect. A Forge Book.

11)

Hacker, J. S. (2005). The Divided Welfare State: The Battle over Public and Private Social Benefits in the United Stat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2)

Jacobs, M.(2005). Pocketbook Politics: Economic Citizenship in Twentieth-Century America. Princeton University Press.

13)

Hacker, J. S.(2015). Out of Balance: Medicare, Interest Groups, and American Politics. Generation, 39(2), 126-133.

14)

Hakcer, J. S.(2005). 위의 책.

15)

Birn, A., Brown, T. M., & Fee, E. (2003). Struggles for national health reform in the United States.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93(1), 86-91.

16)

Kronenfeld, J. J. (1993). Controversial Issues in Health Care Policy. Sage Publications.

17)

Steyn, M.(2006). America Alone: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Regency Publishing, Inc.

18)

Axinn, J. & Stern, M. J.(2007). Social Welfare: A History of the American Response to Need. Allyn and Bacon.

19)

저자 주: 빌 클린턴 행정부의 보건의료 개혁은 사실상 힐러리 클린턴에 의해 주도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때부터 워싱턴 정가(특히 공화당 측)에서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보건의료 개혁을 ‘클린턴케어’ 대신 ‘힐러리케어’라고 지칭했다.

20)

Navarro, V.(2008). Looking back at the future: Why Hillarycare failed.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38(2), 205-212.

21)

Axinn, J. & Stern, M. J.(2007). 위의 책.

22)

Starr, P.(2007). The Hillarycare mythology. American Prospect, October 2007, 12-18.

23)

Hacker, J. S.(2009). Yes We Can?: The New Push for American Health Security. Politics & Society, 37(1), 3-31.

24)

Navarro, V.(2008). 위의 책.

25)

Beland, D., Rocco, P., & Waddan, A.(2016). Obamacare and the Politics of Universal Health Insurance Coverage in the United States. Social Policy & Administration, 50(4), 428-451.

26)

저자 주: 오바마케어의 정치사회적 의미와 영향은 의료보험정책 연구자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이다. 아울러 비슷한 상황에서 왜 클린턴 행정부는 실패하고 오바마 행정부는 성공했는지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 또한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이래 민주당의 정책적 입장 변화, 원외 이익집단 특히 노조와의 관계 변화, 그리고 미국 경제구조의 변화 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원고에서 따로 다루도록 한다.

27)

Baumer, D. C., & Van Horn, C. E.(2014). Politics and Public Policy: Strategic Actors and Policy Domains. Sage Publication.

29)

예컨대 2000만 명 이상이 수년 내 보험을 잃게 된다거나 의료비가 급증할 수 있다는 등의 결과.

30)

Weissert, C. & Weissert, W.(2012). Governing Health: The Politics of Health Policy.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31)

Hindman, D. B.(2012). Knowledge Gaps, Belief Gaps, and Public Opinion about Health Care Reform. Journalism & Mass Communication, 89(4), 585-605.

32)

Peters, B. G.(2004). American Public Policy: Promise and Performance. CQ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