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OECD 보건위원회: 사람 중심의 보건의료제도

The 21st OECD Health Committee: Towards People centered Health Care System

1. 제21차 OECD 보건위원회 의제

2017년 6월 26~27일에 개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제21차 보건위원회(Heath Committee)는 주요 의제로 혁신적 치료 접근 보장, 항생제 내성 예방 전략의 경제성 평가, 보건인력, OECD 보건장관회의 후속 조치, 환자보고지표, 만성질환자의 적절한 의약품 사용, 보건의료 예방 지출 등을 논의했다. 이 글에서는 OECD 보건장관회의의 후속 조치를 중심으로 제21차 보건위원회에서 논의된 의제들을 정리하고, 회의의 결과가 국내 보건의료정책 수립과 추진에 던지는 시사점을 논하고자 한다.

가. OECD 보건장관회의 후속 조치

지난 1월에 개최된 OECD 보건장관회의1)는 미래 보건의료제도의 개혁 방향을 ‘사람 중심 의료’로 설정한 의미 있는 회의였다. 보건의료제도의 새 규범이 될 ‘사람 중심 의료’는 환자의 의료적 요구뿐 아니라 감정적, 기능적, 개인적 요구도 포괄하는 의료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의료기술의 적절한 활용, 환자의 경험과 기대의 측정 및 평가, 팀 기반 의료 등을 장려하는 정책과 규제가 필요하다. 제21차 보건위원회는 지난 장관회의의 결의 사항을 이행하는 연속선상에서 4개 분야(장관회의 요구 과제,2). 환자 중심으로 보건의료제도 재설계, 정신건강, 빅데이터)의 후속 과제를 논의했다. 많은 국가가 ‘정신건강’ 분야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지식 기반 시스템’ 분야의 후속 과제 추진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빅데이터를 활용한 ‘보건의료제도의 거버넌스 개선’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나. 만성질환자의 적절한 의약품 사용

2016년 6월에 개최된 제19차 보건위원회에서는 만성질환자의 복약 순응도, 낮은 복약 순응도의 원인, 만성질환 예방을 통한 의료비 지출 절감 등에 대해 국제 수준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 특히 저조한 복약 순응도로 인해 치료 성과가 낮아 재정 낭비만 초래하는 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관리에 높은 관심을 표했다. 제21차 보건위원회에서 OECD 사무국은 이와 관련된 연구 보고서 초안 검토를 요청했다. 이 보고서는 낮은 복약 순응도와 환자의 건강·조기 사망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계량 모형을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근거에 기반한 복약 순응 개선 정책을 제안한다. 아울러 1) 낮은 복약 순응도의 위험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 2) 복약 순응 질 지표 등을 이용한 정기적 복약 성과 측정, 3)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의료 공급자와 환자에게 인센티브 제공, 4) 개입 방식을 알려주는 등의 처방 의사 지원이 제안됐다. 많은 국가가 이 연구 결과의 정책적 의미와 유용성을 지지했다. 다만, 일부 국가는 이 연구가 단일 질환을 기준으로 개발한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의약품 처방의 적절성을 가정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고, 환자와 의료 공급자 간 신뢰 형성이 정책상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 환자보고지표 조사 진행 보고

지난 1월에 개최된 OECD 보건장관회의에서는 사람 중심 의료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에 부합하는 성과 측정 방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유되었으며, 그 일환으로 ‘환자보고지표조사(PaRIS: Patient Reported Indicators Survey)’ 프로젝트의 추진이 21차 보건위원회 의제로 상정되었다. OECD 사무국은 의료에 대한 환자의 경험을 측정하고 이를 국가 간 비교하는 프로젝트인 PaRIS의 거버넌스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전문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제안하고, 환자보고결과지표(PROMs: Patient Reported Outcome Measures)와 환자보고경험지표(PREMs: Patient Reported Experience Measures)의 개발을 위한 조사 설계 전문가, 조사 통계학자, 의료서비스 전문가, 인구학자 등의 전문가 지명을 각국에 요청했다.

라. 보건인력: 고용과 성장에 관한 고위급 위원회 권고에 대한 후속 조치

이 안건은 지난 보건장관회의에서 요청한 보건인력 혁신과 ‘보건 부문 고용과 경제성장에 관한 고위급 위원회(High-level Commission on Health Employment and Economic Growth: ComHEEG)’의 권고를 반영하기 위하여 추진된 것이다. 지난 1월 회의에서 각국의 보건장관들은 보건의료인의 기술, 보수, 코디네이션에 대한 평가와 디지털화, 기술 변화, 환자의 욕구 확대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한 후속 조치로 OECD 보건위원회 사무국은 2017년 5월 25일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가 채택한 OECD-국제노동기구(ILO)-세계보건기구(WHO) 공동 추진 프로그램인 ‘건강한 세계를 위한 협력(WORKING FOR HEALTH 2017-2021)’ 사업에 OECD 보건위원회가 참여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희망하는 참여 영역을 밝혔다. 사무국이 제안한 참여 영역은 1) 국제 보건인력 이동 플랫폼, 2) 보건인력 기술평가, 3) 보건인력 데이터 구축이었다.

첫째, 국제 보건인력 이동 플랫폼은 보건의료인력의 현황(stock)과 이동(flow)을 모니터링하고, WHO 국제 규약에 따른 모범적 이주 관리, 윤리적 고용 관행, 해외 자격 평가와 상호 인정에 대한 지식 공유, 보건의료인력 이동에 대한 국제 협력 및 거버넌스 강화를 위한 국가 간 대화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한다. 둘째, 보건인력 기술평가는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수요와 역량 간의 기술 불일치 수준을 평가하고, 관련 사례 연구 등을 통해 국가별 보건의료인력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기술평가 도구의 일환으로 국가기술조사(National Skill Survey) 시행도 포함되었다. 셋째, 보건인력 데이터는 OECD 보건인력 계정의 틀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 안건은 OECD 회원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국제적 이슈이다. OECD의 데이터 수집 방식을 개선하고 보건의료인력 혁신을 유도하는 더욱 거시적인 방향에서 WHO, ILO 등 OECD 외의 국제기구뿐 아니라 OECD 내부의 다른 부문과도 협력이 필요하다.

마. 혁신적 치료 접근 보장

프랑스 보건부의 요청에 따라 OECD 보건위원회는 혁신적 약제에 대한 접근과 약제비 지출의 지속가능성 평가를 국제적 수준의 고위급 회담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혁신적 치료법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강화하고, 의료비 지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며, 지속적인 혁신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암, 희귀질환뿐 아니라 의료비 지출에서 영향력이 큰 치료 영역에 대한 접근성도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OECD 사무국은 제약 부문 이해 당사자들의 행태와 최신 동향을 분석하고, 재정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영향 평가 모델과 정책 방안을 제시하는 OECD 보고서 초안의 검토를 요청했다.

제약 부문 혁신은 최근 정밀의학의 발전과 함께 효과적인 치료법에 대한 환자의 기대를 높일 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약제비 지출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논란이 있다. 각국 정부는 새로운 치료법과 의약품을 평가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신약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는 민간 부문의 시장 전망과 위험 수준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특정 질병에 대한 요구(needs)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고, 규제가 불완전한 분야에서는 개별 기업의 독점력 남용이나 반경쟁행위(가격 급등)를 유발할 수 있다. 각국 정부는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을 보장해 주면서 환자의 접근성과 부담의 적절성을 보장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제약산업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활성화하고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각 국가는 1) 지적재산권 보호 및 독점적 지위 보장 정책, 2) 시판 허가 및 신약 평가의 기준을 설정하는 규제기관, 3) 의료기술평가(HTA: Health Technology Assessment)와 관련 조직, 4) 승인 의약품의 시장 판매 가격 규제 등을 통해 특정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시켜 주는 규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제약산업의 생산성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제약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지면서 이것이 전체 연구·개발 지출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최근에는 투자 대비 수익 저하로 투자 유인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개발 투자의 생산성 감소는 복합 질환 증가로 인한 임상 시험 난이도 상승, 임상 시험당 비용 증가를 가져오는 규제의 증대, 효과성 있는 신약의 높은 실패율 등에 원인이 있다.

OECD 사무국이 검토를 요청한 보고서 초안의 전반부에서는 혁신의 생태계와 트렌드 현황을 검토하고 후반부에서는 환자의 의료 접근성 향상과 혁신적 투자 촉진을 위한 정책 방안을 제시한다. 제시된 정책 옵션은 국제 협력 정책과 국가 단위 정책으로 구분되어 있다. 국제 협력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해당사자 간 신뢰를 쌓고 대화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1) 제약산업의 활동과 성과에 대한 투명성 확대(공적 구매를 위한 준비와 협상력 향상) 2) 지역 단위 협력 이슈 탐색 3) 지역 단위 HTA 협력 4) 가격 협상, 계약, 조달에서의 국제 협력 5) 가격 투명성 확대 등의 방안을 제시했고, 미충족 의료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는 차원에서 6) 희귀질환 치료를 포함한 혁신적 치료에 대한 접근성 보장을 위해 필요 집단을 선정한 후 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목표 집단 인센티브 정책을 제안했다. 국가 단위 정책 옵션으로는 접근성, 적정성, 의료 가치를 향상시키는 차원에서 7) 의료산업에 명확하고 일관된 가격 신호 전달 8) 정기적인 의약품 성과 평가 9) 의약품에 대한 환자 접근 보장(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3) 유연성 조항 등) 10) 허가 범위 내 의약품 시장에서의 경쟁 유도 11) 허가 범위 초과 의약품의 독점 형성 예방을 위한 관할 당국의 가격 상승 및 조사 결과 보고 장려 등이 제안되었다. 대부분의 국가가 본 과제 진행에 지지를 표명했으며, 이슈 자체도 복잡하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과제이므로 과제 범위를 명확히 해 진행하기로 했다. 혁신을 유도하는 분야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분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일부 국가의 의견을 반영해 국가별 정책의 일관성을 높이고 복잡한 이슈에 대응하는 정책 패키지 제안 방식이 논의되었다.

2. 결론: 사람 중심 보건의료제도로의 전환

OECD 보건위원회는 사람 중심의 보건의료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통합적 전략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모든 의제가 정책의 영향을 받는 대상자 중심에서 전개되고, 데이터 구축과 분석 기반을 강화하며,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틀에서 상황과 대상에 따른 정책 대안들을 제시함으로써 데이터 기반 대상 표적화(targeting)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OECD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욕구의 변화에 대응하고 보건의료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노력의 핵심에 ‘사람 또는 환자’를 두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 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과 어떤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특히 환자를 중심으로 서비스 연계가 활성화되는 일차의료 강화와 의료전달체계 개혁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는 OECD 보건위원회가 추진하는 관련 과제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해 OECD의 권고와 산출물을 정책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 성과를 비교하기 위한 데이터 구축과 공유 플랫폼 활용은 국내 정책 개발의 투명성, 효과성,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다만, OECD의 의제 범위가 확대되면서 WHO, ILO, 세계은행 등 다른 국제기구와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어 우리나라가 OECD 과제의 참여와 산출물 활용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국제적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따라서 OECD를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각 국제기구의 의제 개발 배경과 추진 과정을 공유하는 국내 대응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Notes

1)

2017년 1월 16~17일에 OECD 회원국 보건장관회의(5년 주기)가 개최되었다.

2)

OECD 보건장관회의의 요구 과제는 세 가지로 첫째는 보건의료제도의 핵심 성과지표를 국가 간 공유할 수 있는 지식 기반 보건의료제도를 구축하는 것이고, 둘째는 낭비를 차단하고 혁신적 치료법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전달 모형을 혁신하고 보건의료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며, 셋째는 고령화에 대응해 일차의료, 공중보건을 강화하고 건강 불평등을 낮추는 포괄적이고 가치 높은 의료전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3)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에서 공중보건을 위한 TRIPS 협정의 유연성 조항들(TRIPS flexibilities)은 신약에 대한 특허권을 제한하여 의약품 가격을 낮추려 하기 때문에 신약 개발을 장려하는 특허권 보장 제도와 일면 상충된다. 빈곤국들이 유연성 조항들을 잘 활용하면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s)나 병행수입(parallel imports) 등의 방법을 통해 값비싼 특허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자료: 유엔에이즈계획(UNAI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