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근로 환경에 대응하는 프랑스의 연결차단권

A Resolution towards Fair Digital Work – France’s Right to Disconnect

1. 디지털 근로 환경

전자기기와 정보통신기술의 가파른 발전은 혁명이라 부를 만한 산업의 성장을 가져와 근로 환경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업무가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면서 산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스마트기기의 활용으로 시공간적 경계를 초월한 업무가 가능해지면서 업무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도 업무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디지털 근로 환경이 근로자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노동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여론이 일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은 디지털 근로 환경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2. 프랑스의 연결차단권

프랑스는 2000년에 주당 근로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임으로써 유럽 국가 중 가장 짧은 근로시간을 유지하고 있다.1) 강한 노동조합, 짧은 근로시간, 연차 유급 휴가(Les congés payés)2) 등 근로자의 인권과 사회보장을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 덕분에 프랑스는 이상적인 근로 환경을 갖춘 나라로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 모범이 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이 근로 환경을 흔들자 프랑스 정부가 직접 나서 근로자의 사생활과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과 규제를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 9월, 프랑스의 통신업체인 오랑쥬(Orange)의 메틀랭(Mettling) 이사는 노동법 개정을 앞두고 노동부에 ‘디지털 변화와 직장 생활(Transformation numérique et vie au travail)3) 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디지털화가 출현시킨 새로운 근로 환경에 적합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할 것을 권한다. 그중 스마트기기가 불러온 새로운 근로 환경에 대한 대응책이 바로 ‘연결차단권(Le droit à la déconnexion)4)이다. 메틀랭 보고서는 디지털 근로 환경의 역효과를 지적하며 정해진 업무시간 외의 시간에 디지털기기로 근로자에게 연락하거나 근로자의 스마트기기에 접속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을 제안했다. 제안에 따르면 기업은 근로자를 위한 디지털기기 사용 교육을 해야 하며 근로자들과 업무량을 협의해야 한다. 사실 연결차단권은 이미 몇몇 국제적 기업에서 실시한 것이다. 메틀랭 보고서는 독일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이 2011년 본사 근로자들의 업무용 스마트폰에 업무시간 외에는 접속이 차단되도록 한 조치를 예5)로 들었다.

메틀랭 보고서와 같은 정책 권고안과 프랑스 노동총동맹(l'Ugict-CGT)의 제안서를 기반으로 프랑스 노동법(Loi travail) 개정안 제25조에는 ‘연결차단권’과 ‘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는 내용6)이 포함되었다. 예정보다 1년 빠른 2017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해당 법안의 골자는 50인 이상 사업장은 노동조합과의 협의를 통해 직원에게 스마트폰, 모바일 메신저의 알림 등을 거부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근로자의 연결차단권 실행 방안을 회사 내규에 명시해야 하며, 그 권리는 근로자의 휴식 보장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구체적인 협약이 없을 경우 사용자는 연결차단권의 실시 형태를 정해야 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관련 내용을 근로자에게 알릴 의무를 진다. 종업원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는 기업 위원회(부재 시 근로자 대표)에서 의견을 청취한 후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 문서로 작성하도록 한다.

최근 프랑스 노동조합과 기업연합은 업무시간 후에는 회사 관련 메일과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협약에 서명했으며, 이에 따라 25만 명의 기술산업 및 컨설팅 분야(구글, 페이스북, 딜로이트 컨설팅 등등) 근로자가 혜택을 받게 되었다. 가디언지(The Guardia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7%7)의 독자가 이 협약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친기업 성향의 노동시장 개혁안은 퇴직금 상한선 도입, 초과 근로수당 감축, 공공 부문 일자리 감축을 통해 기업의 채용과 해고 권한을 확대해 고용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로 인해 연결차단권을 포함해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다수 법안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경제장관을 지낼 때 추진한 노동법 개정안에 연결차단권이 포함됐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해당 법안은 개혁 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결차단권이 실질적으로 사회보장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연결차단권으로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이런 제도의 실행이 회사에 끼칠 수 있는 불이익에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제도 실행에 따른 제반 환경을 갖춰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많은 근로자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근로시간 외의 시간에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결차단권의 실질적인 법적 효율성은 굉장히 낮다는 의견8)도 있다. 이미 근로시간과 관련해 재량근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번아웃(burn-out)과 스트레스를 직업병으로 규정해 근로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9)을 사회가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결차단권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일과 가정의 균형 발전과 노동권 보호에 기본적인 규범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3. 시사점

노동법 개혁을 통해 시대에 맞는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일은 프랑스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시급한 문제이다.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이 전국 제조업·서비스업 근로자 2,4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86.1%가 퇴근 후 스마트폰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일주일 기준 초과근무 시간이 무려 11.3시간10)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2016년, 퇴근 후에는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이른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은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외의 시간에는 전화, 문자, 카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각종 통신수단을 사용해 업무 지시를 내림으로써 근로자의 사생활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11)하고 있다. 2017년 3월에는 국내 7개 증권사의 노사단체가 각 회사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와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를 골자로 하는 합의안에 서명12)하기도 했다. 본 합의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통신수단 등을 통한 업무 지시는 근무시간 내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본 안건이 법제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해당 법안의 검토 보고서에서 “입법 취지는 타당하지만 업무시간 외에라도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업종별로 여건 차이가 크기 때문에 법률로 일괄해 금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현실적인 집행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13)고 밝혔다.​

현재 시점에서 근무시간 외의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업무 지시를 받는 부담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취업 규칙 개정을 통한 통제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기업은 근로자의 생명·신체 및 건강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안전 배려 의무’14)를 가지며, 근로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근로 환경을 개선해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주의 근로 환경 개선, 근로자 건강 보호 의무는 근무시간 중 사업장에서뿐만 아니라 퇴근 이후에도 지켜져야 하며, 이를 위해 퇴근 이후 근로자의 실질적인 휴식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취업규칙에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가 내려질 경우, 10분 이상 지속되면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도록 하는 규정도 하나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 더불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강요당하거나 이를 거절해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퇴근 후 업무 지시가 가능한 사유와 거절 시 불이익 금지 규정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한국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업무 카톡 금지법만 통과시키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법안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부수적인 제도 마련과 기업의 동참을 이끌어 내는 데에 힘써야 할 것이다.

Notes

1)

Estevão, M., & Sa, F.(2008). The 35-hour workweek in France: Straightjacket or welfare improvement? Economic Policy, 23(55), 418-463.

3)

Mettling, B.(2015). Transformation numérique et vie au travail. Rapport, septembre, 78-153.

5)

Tsukayama, H.(2011). Volkswagen silences work e-mail after hours. The Washington post, 23.

6)

이은주(2016). 프랑스의 디지털 시대 근로환경 변화에 대한 노동법상 논의. 국제노동브리프, 14(7), 78-90.

7)

Mangan, L.(2014). When the French clock off at 6pm, they really mean it. The Guardian.

8)

박제성 등(2016). 프랑스 노동법 개정 과정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 한국노동연구원. 정책자료 2016-01.

9)

이은주(2016). 위의 책.

10)

이경희(2016). 스마트기기 업무활용 실태와 효과. 노동리뷰, 2016년 2월호, 5-19.

11)

하예나(2016). 퇴근 후 업무카톡 금지법안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한국법제연구원. 법제이슈브리프 제18호.

12)

정지원(2017).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 디지털화’는 양날의 칼. http://www.sisajournal-e.com/biz/article/167110에서 2017. 8. 5. 인출.

13)

이승윤(2017). ‘퇴근 후 업무지시 카톡 금지법’ 입법 필요.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107200에서 2017. 8. 5. 인출.

14)

박은정(2016). 감정노동과 노동법. 노동정책연구, 16(3), 5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