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거난 해소를 위한 정책 방안 -공공임대주택 제도 중심으로

France’s Strategy to Housing Crisis - Social Housing

1. 들어가며

인간 삶의 기초는 의식주이다. 빠른 경제사회 발전으로 대한민국은 대다수 국민들이 기본적인 의(衣)와 식(食)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마지막 요소인 주(住), 즉 주거 문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을 야기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지속되는 구직난과 더불어 최근 다시 한 차례 몸살을 앓은 집값 폭등의 문제로 이제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는 어느새 인간관계와 자가 마련까지 포기하는 오포세대로 바뀌었다. 점점 악화되는 주거난은 구조적인 빈부격차, 인구감소, 경제불황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될 경우 사람들의 정신적 빈곤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 프랑스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발전 배경

한국만 이러한 주거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 주요 도시들은 모두 집값 폭등이 사회·경제적 문제로 이어져 더 극심한 주거난을 야기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의 수도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인 파리 또한 주거난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프랑스 파리가 꺼내든 카드는 공공임대주택제도(HLM·Habitation à Loyer Modéré)이다. 19세기 민간 기업들이 박애주의적 차원에서 공급하기 시작한 저가노동자주택(HBM·Habitations à Bon Marché)이 19세기 후반 들어 점차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당시 사회를 위협하던 사회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에서 역사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전지윤ㆍ김경미, 2019). 1950년 HBM을 HLM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더 이상 노동자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파괴된 도시를 재건축하고 국민의 전반적 주거 안정을 위한 제도로 자리잡았다. 도시화 우선 지역을 중점으로 기존 개인 주택과 다른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다. 1975년까지 건설된 공공임대주택 300만 호 중 약 3분의 1이 이러한 아파트 단지로 보급되면서 번영의 시기를 거쳤다. 이후 경제불황이 오고 저소득층 혹은 소수인종이 HLM에 대거 거주하게 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불거졌다. 1990년대에는 취약계층의 주거 보장을 위한 제도로 인식되면서 성장 속도가 더디어졌다. HLM은 2000년대 들어서야 다시 부흥기를 맞이했는데, 2000년도에 제정된 사회 연대 및 도시 재생에 관한 법률(SRU·Loi Solidarité et Renouvellement Urbain)이 큰 역할을 했다. SRU는 도시 기본법 내 미비했던 HLM 공급 의무 실현을 강화하여 인구 3500명 이상, 파리의 경우 1500명 이상의 자치구는 2020년까지 전체 주택 내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20%까지 의무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Ministère Territoires & Collectivités, 2019). 이를 준수하지 않은 자치구에는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 법은 2013년 개정되어 공공임대주택 공급 비율은 2025년까지 25%로 늘어났다. HLM은 현재 도시를 재생하고 다양한 문화와 사회계층을 통합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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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프랑스 공공임대주택 추이 및 OECD 주요 국가와의 비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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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일보. (2020). ‘소셜 믹스’로 임대주택 갈등 조율하는 프랑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0820/102561115/1

프랑스 내 공공임대주택 재고 수량은 꾸준히 증가하여 2000년 418만 호에서 2010년 451만 호, 2018년에 는 480만 호에 이르렀다.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 훨씬 안정적인 추세로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도 전체 주택 내 17~18% 비율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프랑스의 주택 점유 형태는 크게 자가 소유 57.7%, 민간임대 거주 22.9%, 공공임대주택 거주 17.0%로 구성되었다(전지윤ㆍ김경미, 2019).

3. 프랑스 파리의 주거 안정 정책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내에서도 중점 도시들이 더 극심한 주거난 문제를 마주하고 있으며 파리가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이다. 2019년 9월 파리 시내의 평균 집값은 ㎡당 1만 유로(약 1318만 원)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배정원, 2019). 이는 곧 1평(3.3㎡)당 4350만 원 이상이라는 의미다. 파리 거주자의 70% 정도는 월세 세입자인데, 2000년부터 2018년까지 파리 월세가 40% 상승할 정도로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넘쳤다. 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커지자 2014년부터 재직 중인 파리 시장 안 이달고는 부동산 전쟁을 선포했고, 연간 주택 1만 호 공급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등 주거 안정에 힘쓸 것을 약속했다(서울연구원, 2015).

파리 HLM 진행의 특이점은 최소득층에만 혜택을 몰아줌으로써 부자연스러운 사회적 융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을 끌어들임으로써 전반적인 사회 안정화와 문화적 공존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파리 HLM의 혜택은 소득 기준에 따라 소득층형(PLAI), 표준형(PLUS), 중산층형 (PLS)으로 나뉜다(김윤종, 2020). PLAI는 수도권 4인 가구 기준 연소득 3만 521유로(약 4308만 원) 미만, PLUS는 5만 5486유로(약 7830만 원) 미만이면 거주가 가능하다. 반면 PLS의 소득 제한은 7만 1016유로(약 1억 22만 원)이다. 즉 연간 소득 1억 원이 넘는 중산층도 임대주택에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융합을 위한 또 다른 노력으로는 부촌 내 HLM 확대 공약이 있다. 외곽에 공공임대주택을 설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지역 간 빈부 격차 악화와 특정 지역의 슬럼화 방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시내 중점 곳곳에 HLM 건설을 추진해 왔다. 2020년 7월에는 에펠탑 인근의 7구에 최신식 HLM이 세워졌고, 샹젤리제 거리 인근의 8구에도 신축 HLM이 완공됐다. 낮은 임대료에 좋은 위치에 세워진 최신식 HLM 아파트를 얻기 위한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며, 2019년 말 입주 대기자만 200만 명에 달했다.

HLM 연장선상에서 이달고 파리시장이 2015년 제안한 멀티록 사업 또한 주목할 만하다. 파리시의 부동산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중산층이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현상과 집주인이 장기간 집을 비우거나 임대를 기피해 공가(空家)가 증가하는 현상(당시 파리 내 공가 약 4만 호로 추정)을 연결해 중산층이 빈 주택을 임차해 살 수 있도록 연결하는 멀티록 사업은 중산층과 청년층을 주요한 대상으로 한다(서울연구원, 2015). 멀티록을 통한 주택 임대 가격은 주변 시세보다 20% 낮아 임대료 부담을 낮췄다. 문제는 사업을 성사시켜 줄 부동산 임대 업체와 집주인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업에 참여하는 부동산 임대 업체에 주택 한 채당 1000유로(약 118만 원), 반년 이상 빈 주택의 임대 계약이 성사될 경우 1200유로(약 142만 원)를 지급했다. 집주인의 경우 빈집을 임대할 경우 2000유로(약 238만 원)를 받을 수 있었다. 동시에 월세 체납, 주택 손상 등 임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파리시가 책임을 졌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여전히 주거 안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까다로운 도시 계획법과 건축 허가, 그리고 이미 천정부지로 상승해 프랑스 전체 평균보다 4배 정도 비싼 파리의 부동산 시장을 주택 공급 증대를 통해 잡기는 쉽지 않았다(배정원, 2019).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문화적, 사회적 융합을 실현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도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공공임대주택 건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지역의 슬럼화와 치안 불안정 현상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HLM에 대한 반발이 커지기도 했다. 특히 파리 부촌의 경우 HLM에 대한 반발이 거센 편이다. 대표적인 부촌에 해당되는 6∼8구, 16구 내 HLM 비율은 전체 주택의 3∼6%에 불과하다(김윤종, 2020). 파리 외에도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 과태료를 내는 지자체가 649곳에 달한다. 남부 르카네시의 경우 벌금만 무려 140만 유로(약 20억 원)를 물어야 했는데, 차라리 벌금을 선호하는 지역도 없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HLM의 질적 향상을 추진하면서 가장 최우선시되어야 할 극빈층이 오히려 공공주택에서 배제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신축 HLM 임대료의 경우 중산층에게는 혜택으로 다가오지만, 극빈층에게는 부담스럽다는 주장이다.

4. 나가며

‘모든 사람은 집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는 복지 국가 프랑스의 주거권 보장이자 근로 계층의 집결을 기반으로 한 사회 통합의 대전제이다(전지윤ㆍ김경미, 2019). 주거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지금까지 추진된 정책에 결점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1세기가 넘는 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사회적 통합, 결속, 연대라는 기치와 공정한 기회 부여 삼아 소득계층 간 및 공간 간 재분배를 추진해 왔다. 접근 방법에 이견은 있었을지언정 집권당과 야당, 그리고 국민 모두가 공공임대주택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단단한 사회 연대 의식을 통해 꾸준히 공공임대주택을 확장한 결과 프랑스 내 공공임대주택은 480만 호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공공임대주택의 확장이 추진되어 왔다. 정부가 2017년 발표한 ‘주거 복지 로드맵’에 따르면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 총 85만 가구가 공급될 계획이다(대한민국정책브리핑, 2018). 2017년 기준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전반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세종 11.3%, 울산 3.6%로 지역 간 격차 또한 큰 것으로 보고되었다. 프랑스의 HLM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겠으나, 지자체 할당 제도, 멀티록 사업 등을 한국화하여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HLM 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성공 요인은 단단한 사회 연대 의식과 공공임대주택을 중시하는 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한국의 주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충분히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References

1 

김윤종. (2020. 08. 20.). ‘소셜 믹스’로 임대주택 갈등 조율하는 프랑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0820/102561115/1에서 2020-11-12 인출. 동아일보.

2 

대한민국정책브리핑. (2018. 05. 09.). 청년부터 노인까지 ‘주거복지로드맵’ 마련. https://www.korea.kr/special/policyFocusView.do?newsId=148850494&pkgId=49500714에서 2020-11-12 인출. 문화체육관광부.

3 

배정원. (2019. 12. 19.). 유럽, 제로금리 5년⋯파리·뮌헨 집값 30~40% 올랐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60610에서 2020-11-12 인출. 중앙일보.

4 

서울연구원. (2015. 04. 07.). ‘빈집을 임대주택으로 활용’ 중산층 주거난 해결 (프랑스 파리市) [356]. https://www.si.re.kr/node/51772에서 2020-11-12 인출. 세계도시동향.

5 

전지윤, 김경미. (2019.. 8..). 프랑스 공공임대주택의 지속 성장의 기반과 최근 정책 딜레마. 주택연구, 27(3), 5-40, http://www.kahps.org/data/_research/201908/15672616882287.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