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빌파트너십(합법적 동거) 제도의 도입 및 과제

Civil Partnership in the UK

1. 들어가며

현대 사회의 가족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결혼이라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함께 동거만 하는 커플들을 위해 1999년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을 비롯하여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도 동거제도를 제정하였다. 영국의 시빌 파트너십은 2005년 동성 커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2019월 5월부터는 그 범위를 넓혀 이성 커플을 대상에 포함하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시빌 파트너십의 배경, 기존 결혼제도와의 차이 그리고 시사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2. 배경

영국의 시빌 파트너십은 2005년 동성 커플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시빌 파트너십법2014(Civil Partnership Act 2014)」를 제정한 것이 시초이다. 동성 커플에게 결혼제도를 허용하는 대신 법률의 보호를 받는 제도를 제공함으로써 잉글랜드의 종교를 존중하는 동시에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2011년 12월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종교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등록이 가능하였다. 「결혼조약법(동성) 2013(Marriage (Same Sex Couples) Act 2013)」 의 제정을 통해 2014년부터는 동성 간 시빌 파트너십을 결혼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결혼조약법(동성) 2013(Marriage (Same Sex Couples) Act 2013)」이 의회를 통과하는 동안 정책 대상을 확대하는 이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논의의 일부로서 진행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만 634명의 4분의 3 이상이 정책 대상을 이성으로 확대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1) 응답자들은 반대하는 이유로 기존의 결혼제도의 쇠퇴 가능성과 이로 인한 가족의 영속성 개념 해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응답자들은 결혼을 평생 약속의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양육 시 아이들에게 법적으로 적절한 환경이라 법적으로 적절한 환경이라 인식하였으며,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들기도 하였다. 이에 시빌 파트너십을 하려는 커플 수가 현저히 낮을 것으로 예상하며 정책예산 낭비를 우려하는 입장 또한 제기되었다. 반면, 시빌 파트너십을 찬성하는 측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이성 커플도 동성 커플처럼 동등하게 이 정책을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결혼 예식을 원하지 않거나 종교적 의미, 기존의 결혼제도에 대한 의미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했다. 예상보다 높은 반대에 정부는 시빌 파트너십의 정책 대상을 확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런던의 한 이성 커플인 레베카 스타인필드와 찰스 케이단이 기존 결혼제도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하며 그들의 관계를 시빌 파트너십으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으로 소를 제기한다. 그러나 2016년에 고등법원에서, 이듬해 2017년에 상소법원에서도 패소한다. 이에 국회의원인 티머시 러프톤은 시빌 파트너십의 대상을 이성으로 확대하자는 안건을 내지만 2017년의 두 번째 토론 이후 총선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다.

2018년 6월, 대법원에서 이성의 시빌 파트너십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적인 행위이며 따라서 정부가 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역전된다. 이에 총리는 2018년 10월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고, 2019년 3월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였다. 법안은 2019년 5월 26일부터 발효되었으나 「시빌 파트너십법 2014(Civil Partnership Act 2014)」 제2조항을 수정하며 실질적으로는 2019년 12월부터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3. 기존 결혼제도와 시빌 파트너십 비교2)

가. 법적 토대 및 자격

•법적 토대: 기존 결혼제도는 「결혼조약법 1949(Marriage Act 1949)」, 「혼배소송법 1973(Matrimonial Causes Act 1973)」을, 시빌 파트너십은 「시빌 파트너십법 2004(Civil Partnership Act 2004)」와 「시빌 파트너십법(다른 성별) 규정 2019(Civil Partnership (differentsex) Regulation 2019)」를 토대로 하며 둘 다 기타 목적으로 결혼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자격(공통): 두 사람의 성별이 달라야 하며, 만 16세 이상(만 18세 이하의 경우 부모의 허락 필요함), 결혼이나 시빌 파트너십을 맺지 않은 상태여야 하며, 친족관계가 아니어야 한다.

나. 진행 과정

•진행: 결혼은 예식을 통해 이루어지며, 규정에 정해진 서약 문구를 엄숙한 분위기에서 읊는다. 결혼 예식은 민사 의식이나 종교 의식으로 진행한다. 반면 시빌 파트너십은 관련 문서에 사인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읊어야 하는 문구는 따로 없다. 시빌 파트너십의 예식은 행사 정도로 인식된다. 문서에 사인을 한 후 개별적으로 예식을 할 수도 있으나 결혼처럼 공식적인 형태의 예식은 아니며, 종교에 기반하여 서명을 했다면 (종교기관의 동의를 얻어) 예식은 종교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행정 절차: 결혼 최소 29일 전에 예식을 구역 등록지에 각각 고지한다. 고지 지역은 각자 고지 전 7일간 머무른 지역으로 정해진다. 둘 중 이민규정에 관련된 사람은 지정 오피스에서 등록 가능하다. 결혼등록서에는 성명, 생년월일, 성별, 직업, 주소 및 거주 기간, 결혼생활 장소, 국적, 양측의 현 거주 지역을 포함한다. 그리고 인쇄된 종이에 등록된다. 시빌 파트너십은 최소 29일 전에 각자 거주하는 지방정부에 고지하며, 고지 전 7일간 머무른 지역에서 각자 신청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둘 중 이민규정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지정 오피스에서 등록 가능하다. 시빌 파트너십 등록서 역시 결혼과 항목이 같으나, 등록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종이가 아닌 전자기기에 녹음되는 것으로 진행된다.

다. 인증

•증서: 결혼증서는 각자의 아버지(혹은 새아버지)의 이름을 포함하는 반면, 시빌 파트너십은 각자 아버지와 어머니(혹은 새아버지, 새어머니)의 이름을 포함한다.

•해외 인정: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이루어진 결혼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으나 시빌 파트너십은 다른 몇 나라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으며 각 국가에서 법적으로 얼마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라. 무효 및 이혼/파기

•무효: 결혼은 어느 한쪽이 이 결혼의 유효성에 동의하지 않았을 때, 둘 중 한 명으로 인해 결혼 후 성생활이 전무할 경우, 둘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어 결혼생활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 결혼 당시 둘 중 한 명이 전염성 성병을 겪고 있을 때, 결혼 시점에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 중일 때, 결혼 후 한쪽의 성 정체성이 문제가 될 때 무효 신청을 할 수 있다. 시빌 파트너십은 위 결혼 무효 조건의 성생활 항목을 제외하고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혼/파기: 결혼관계 중 이혼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 하나 혹은 다수로 인해 결혼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될 때 신청 가능하다. 간통으로 인해 배우자가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 배우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 2년간 배우자 방기 혹은 별거(배우자 동의 필요함), 5년 별거(배우자 동의 필요 없음). 시빌 파트너십의 파기 내용은 위 이혼 내용의 간통 항목을 제외하고 동일하게 적용된다.

마. 연금 수급

•결혼/시빌 파트너십: 새로운 연금 개편에 따르면 결혼/시빌 파트너십 모두 2016년 4월 6일 전까지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한 경우 오직 개인의 국민보험제도(NI: National Insurance) 기록에 의거하여 수급 가능하며, 추가적인 기초국민연금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이용이 불가하다. 결혼관계의 경우 추가적인 조건이 따르는데, 결혼한 남성의 경우 배우자가 1950년 4월 5일 이후 출생자이면 배우자의 NI 기여도에 따라 저율기초연금을 수급할 수 있으며, 결혼한 여성은 2016년 4월 6일 전까지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한 경우 배우자의 출생연도에 상관없이 배우자의 NI 기여도에 따라 저율기초연금을 수급할 수 있다.

•배우자(결혼)/파트너(시빌 파트너십) 한 명이 사망 시: 위 항목과 동일하게 새로 도입된 연금 시스템하에서는, 2016년 4월 6일 이후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한 경우 개인의 NI 기록에 의해 지급되며,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사망한 배우자나 파트너의 연금을 상속받을 수 없다. 시빌 파트너십은 사망한 파트너가 2016년 4월 6일 이전에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한 경우, 남·여 구분 없이 파트너의 연금을 상속받을 수 있다. 결혼관계의 경우, 기존의 연금 시스템하에서는 상처한 남성의 경우 배우자가 2010년 4월 6일 이전에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상속 가능한 수급 연금의 종류가 다르며, 여성의 경우 배우자가 2016년 4월 6일 이전에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했으면 상속받을 수 있다.

4. 시사점 및 맺음말

영국의 시빌 파트너십은 인권, 평등 관점에서 ‘동성’을 위해 도입된 정책으로, 이후 정책 대상이 ‘이성’으로 확대된 형태를 보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성 간 시빌 파트너십에 대한 반대의견이 4분의 3을 넘는 압도적인 결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성만 시빌 파트너십을 갖는 것이 성평등 관점에서 차별적임을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정부가 신속하게 법을 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판결에는 기존 결혼제도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며 따라서 현대 사회 기조에 더 적절한 시빌 파트너십을 도입해야 한다는 레베카 스타인필드와 찰스 케이단 커플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역시 사안을 고려한 바 있으나 한편으로는 대법원의 판결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신속한 수립이 가능했을지는 미지수이다. 따라서 영국의 이성 간 시빌 파트너십은 성평등 관점에서, 그리고 전통적 의미의 결혼제도에서 벗어나 현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받아들인 결과이긴 하나, 프랑스나 스웨덴의 동거정책처럼 대다수 시민들의 요구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결혼제도와 시빌 파트너십 조건의 가장 큰 차이는 ‘신체적 정신적 유대’의 언급과 남·여 구분을 들 수 있다. 기존의 결혼제도는 무효 및 이혼 사유에 부부의 성생활이 중요한 순위를 차지하는 반면, 시빌 파트너십에는 따로 언급된 바가 없다. 간통 항목 또한 결혼제도에서만 언급될 뿐, 시빌 파트너십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남·여 구분은 결혼증서나 연금 수급 부분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결혼증서에는 전통적으로 가장으로 인식되어온 아버지 혹은 새아버지의 이름을 포함하는 반면, 시빌 파트너십 증서에는 부모 양측 모두의 이름을 포함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게에 변화가 있음을 나타낸다. 연금 수급 부분에서도 기존 결혼제도는 남·여의 수급 조건이 다르게 제시되나 시빌 파트너십은 양측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두 제도의 미묘한 차이가 커플 내 개인 간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또 그러한 영향이 가족관계 및 사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Notes

1)

설문조사의 응답자 중 이성애자라 답한 비율이 78.7%, 기혼 비율이 61%였다.

2)

Gov.uk. (2019). Marriage and civil partnership in England and Wales. UK Government 주요 발췌.

References

1 

글로벌 사회정책 브리프. (2016). 비혼 동거 커플의 증가와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PACS). 보건사회연구원.

2 

Department for Culture Media & Sport. (2014). Civil Partnership Review (England and Wales): a consultation. UK Government.

3 

Department for Culture Media & Sport. (2014). Civil Partnership Review (England and Wales): Report on conclusions. UK Government.

4 

Gov.uk. (2019). Marriage and civil partnership in England and Wales. UK Government.

5 

Coleman C. (2019. December. 3.). Civil Partnerships: Fist mixed-sec unions take place. Retrieved from https://www.bbc.com/news/uk-50953410. BBC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