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육아휴직 제도의 변화와 연속성: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중심으로

Shared Parental Leave in the UK: change or continuity in the parental leave system?

초록

영국에서는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를 장려하고자 2014년부터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부부간의 자율적인 선택과 합의에 따라 육아휴직을 동시에 혹은 번갈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도입 4년차인 2018년에 이 제도를 사용한 부모는 단 1%에 그쳤다. 이에 따라 과연 이 제도를 통해 영국 정부가 목표한 바와 같이, 여성을 주 양육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공동 부모휴가 제도 도입 이후 드러난 문제점을 상세히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소득대체율이 높은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함을 밝히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영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가족에 대해 기존의 비개입주의적 접근 대신 좀 더 명시적인 가족정책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가족-시장-국가 사이의 돌봄 책임 분담뿐만 아니라 가족 내 부부간의 돌봄 노동 분담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2002년 최초의 유급 부성휴가 도입을 시작으로 2011년에는 추가 부성휴가를 도입하였고, 마침내 2014년에는 아동가족법(Children and Families Act)의 일부로 공동 부모휴가 및 급여(Shared Parental Leave and Pay)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로써 더욱 성평등한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공동 부모휴가 제도가 외형적으로는 상당한 골격을 갖추었지만, 영국 정부조차 실제 사용 비율은 2~8% 정도로 낮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버밍엄대학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18년에 자격 요건을 충족한 부모 중 실제로 휴가를 사용한 사람은 9200명으로 사용률이 1%였다. 이는 정부 예측에도 못 미치는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영국의 기업에너지사업전략부(Department for Business, Energy & Industrial Strategy)는 공동 부모휴가 제도의 주요 문제점이 제도에 대한 인식 부재라고 판단해 2018년부터 ‘나누는 기쁨(Share the Joy)’ 캠페인을 벌여 제도의 존재와 이점을 알리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50만 파운드(약 2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북유럽 복지국가들처럼 남성에게 의무적인 육아휴직을 할당하는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공동 부모휴가 제도만으로는 현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Atkinson, 2017; Baird & O’Brien, 2015; Mair, 2016).

이 글에서는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중심으로 영국 육아휴직 제도의 문제점을 다각도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육아휴직 관련 정책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도적 맥락을 우선 살펴보는 이유는 관련 정책들이 복지와 가족 문제에서 어떠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어떠한 규범적 가정에 따라 정책을 설계해 왔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공동 부모휴가 제도가 영국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전통적인 성 역할을 토대로 하는 노동 분업화를 탈피하기 위한 획기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기존 경로 발달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다음으로, 공동 부모휴가 제도처럼 육아 참여에 대한 자율적인 선택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왜 전통적으로 고착화된 성별 분업 문화와 남녀 간의 역학 관계를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은지를 설명하고, 따라서 소득대체율이 높은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함을 밝히고자 한다.

2. 영국 육아휴직 제도의 발달 과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복지국가는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돌봄제공자로서 기능하는 가족 모델을 바탕으로 하여 건설되었다(Lister, 1990, 1997a, 1997b; Orloff, 1993). 영국은 성 역할 분리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의 대표적인 예로 많이 언급되어 왔으나, 성별 분리 노동을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재생산하기보다는 가정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에 최소한으로만 개입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다. 비개입주의(non-interventionist) 혹은 최소개입주의(minimalist interventionist)라고 불리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성 보수주의 국가들, 예를 들어 출산을 장려하는 가족주의 성향이 강한 프랑스나, 혼인과 가족의 보호를 위해 다양한 가족 지원 정책을 도입해 온 독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국 가족정책의 고유한 특성이다(Daly, 2010a, 2010b).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자녀 양육 문제를 오랫동안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해 왔으며, 특히 취학 전 아동은 어머니가 돌보는 것이 좋다는 사회적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Lewis, 1994).

그러나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1970~1980년에 여성 노동 참가율이 급증하면서 성별 분리 노동의 유지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노동당은 1997년 총선 당시 ‘건강한 가족과 지역사회(strong families and strong communities)’ 건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며 영국 역사상 최초로 가족에 관한 자문 보고서를 발간하기에 이른다(Home Office, 1998). 가족 지원의 초석을 마련한 신노동당(New Labour) 정부의 정책 목표를 살펴보면, 가족을 위한 재정 지원 확대, 일과 가족생활의 균형, 부모를 위한 지원 서비스 확충,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심각한 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 확대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Home Office, 1998). 이는 영국이 가족을 기본적 사회 집단으로 인식하고 가족 강화를 위해 국가가 가족생활에 어느 정도 개입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Daly, 2011). 2010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함에 따라 아동의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보다는 여성 고용 활성화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지만, 가족의 돌봄 책임을 줄이고 더 나은 일·생활 균형을 위한 육아휴직 제도 개정안을 도입하려는 정책 방향은 유지되고 있다(Lewis & West, 2017). 영국 육아휴직정책의 발달 과정을 요약하면 <표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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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영국 육아휴직 제도의 변화와 연속성

연도 정책 주요 내용 변화 및 연속성에 대한 연구자의 검토
1975년 고용보장법(Employment Protection Act) 18주간의 유급 모성휴가(첫 6주는 90%의 정률 급여, 나머지 12주는 정액 급여)와 근무하던 직장으로 복귀할 권리를 명시함. 자격 기준을 ‘적어도 2년 동안 지속적으로 동일 사업장에 근무한 정규직 여성’으로 한정함으로써 여성이 주 양육자임을 가정함.
1999년 모성 및 부모휴가 등에 관한 법률(Maternity and Parental Leave etc. Regulations) 만 5세 이하 아동의 부모에게 13주간의 무급 휴가를 법적으로 보장함.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근로자에게 양육 관련 휴가를 허용하기 시작했으나, 무급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성별 분리 노동에 여전히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임.
2002년 고용보장법 개정, 부성 및 입양휴가 법률(Paternity and Adoption Leave Regulations) 최초로 남성 근로자에게 2주간의 유급 부성휴가를 부여하고, 유급 모성휴가를 기존의 18주에서 26주로 확대함. 남성 근로자에게 유급 부성휴가를 보장함으로써 전통적 성 고정관념의 변화를 보였으나, 유급 모성휴가 기간 역시 늘림으로써 모성주의 지향성(maternalist orientation)이 지속됨.
2006년 일과 가족법(Work and Families Act) 기존의 26주 유급 모성휴가를 50% 확대하여 39주로 늘리고, 이어서 출산 후 1년까지 무급 휴가 사용을 허용함. 많은 유럽 국가가 여성의 노동시장 복귀를 위해 모성휴가 기간을 줄이거나 유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모성휴가를 다시 대폭 확대함으로써 여전히 여성이 주 양육자임을 가정함.
2011년 추가 부성휴가 법률(Additional Paternity Leave and Pay) 출산 후 20~52주 사이에 최대 26주의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 부성 양육휴가 사용 시 여성은 반드시 직장에 복귀해야 함. 남성 근로자에게 추가 부성휴가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남성의 육아 참여를 유도한다는 변화를 보였으나, 소득대체율이 낮다는 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보기 어려움.
2014년 공동 부모휴가 제도(Shared Parental Leave and Pay) 50주의 육아휴직과 37주간의 육아휴직 수당을 부모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함. 국가적 차원에서 남성에게 육아책임을 나눠 맡게 하기보다는 부부가 자율적으로 분담하도록 선택권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최소개입주의 및 자유주의 노선이 지속되고 있음.

남성과 여성 모두의 육아 권리에 대한 규정 개정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표 1).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의 모성휴가 및 육아휴직 사용권 확대에 비해 남성의 부성휴가 및 육아휴직 제도화의 역사가 짧다는 점이다. 유급 부성휴가는 2002년 고용보장법(Employment Protection Act) 개정의 결과로 2003년에야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한 권리도 무급은 1999년, 유급은 여성 배우자의 노동시장 복귀를 조건으로 2011년에야 도입되었다. 이러한 더딘 발달 과정은 다른 유럽 복지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표 2). 남성의 돌봄 권리가 확립되면서 여성의 유급 모성휴가 기간도 기존의 18주에서 26주로, 다시 26주에서 39주로 대폭 확대되었는데, 이는 영국 복지국가가 여전히 여성을 주 양육자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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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주요 유럽 국가들의 육아 관련 유급 부모휴가의 최초 도입 연도

모성휴가 부성휴가/ 배우자 출산휴가 남성 유급 육아휴직 (최대 사용 기간) 아빠 할당제
북유럽 덴마크 1960년 1984년 1984년(10주) 1997-2002년
노르웨이 1956년 1977년 1977년(12주) 1993년
핀란드 1964년 1978년 1985년(158일) 2003년
스웨덴 1955년 1980년 1974년(6개월) 1995년
서유럽 독일 1968년 - 1986년(8개월) 2007년
프랑스 1928년 2002년 1984년(2년) -
네덜란드 1969년 2001년 1991년(6개월)3) -
영국 1975년 2003년 2009년(6개월) -
남유럽 이탈리아 1950년 2013년 1977년(6개월) -
포르투갈 1963년 1999년 2009년(120일) -
스페인 1966년 1931년 1980년 -

자료: OECD 가족 데이터베이스와 각 정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연구자가 재구성함.

2014년에는 2015년 4월 5일 출산 예정인 근로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신설하였다. 이는 출산한 여성이 보건 및 안전상의 이유로 반드시 써야 하는 출산 직후 첫 2주1)의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50주의 육아휴직 기간과 37주간의 육아휴직 수당을 부모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2) 여성을 주 양육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뜨림과 동시에 남녀의 동등한 유급·무급 노동 참여를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존의 무급 부모휴가 제도를 유급화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 52주간의 모성휴가를 부부간 합의에 따라 출산 여성의 배우자나 파트너가 대신 쓸 수 있게 한다는 점, 국가적 차원에서 남성의 육아 참여를 유도하기보다는 육아 책임 분담 문제를 부부간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긴다는 점, 주당 138.18파운드(약 20만 원) 또는 근로소득의 90% 중 더 낮은 수당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유주의 및 최소개입주의 노선과 모성주의 지향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3. 사회적 환경과 공동 부모휴가 제도의 과제

현재 영국에서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사용하기 위한 자격 요건은 다음과 같다. 먼저, 부부나 사실혼 관계인 남녀가 공동으로 육아휴직 제도를 동시에 사용하려 할 경우, 둘 모두 출산 예정일로부터 15주 이전 시점까지 현 직장에서 26주 이상 근속한 상태여야 하고 주당 최소 118파운드(약 17만 원)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 만약 출산 여성의 배우자나 파트너가 육아휴직 제도를 나누어 사용하려 한다면 다음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여성의 경우 출산 예정일 이전 66주 중 도합 26주 이상의 기간 동안 취업하여 그중 13주 동안의 소득이 적어도 총 390파운드(약 57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 배우자나 파트너는 공동 사용 때와 마찬가지로 출산 예정일로부터 15주 이전 시점까지 현 직장에서 26주 이상 근속한 상태여야 하고 주당 최소 118파운드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 이 규정은 출산 여성의 배우자나 파트너가 먼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자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격 요건을 갖췄다면 출산 여성과 배우자 혹은 파트너는 적어도 8주 전에 사용자에게 휴가를 1회 연속하여 사용할 것인지 뙤는 최대 3번까지 나누어 사용할 것인지 알려야 한다. 기존의 계획을 변경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로 휴가 시작일의 최소 8주 전까지 사용자에게 알려야 한다. 육아휴직 도중에 근무를 하고자 할 경우, ‘부모휴가 중 출근일(SPLIT: Shared Parental Leave in touch days)’이라는 하위 규정에 따라 육아휴직을 종료하지 않고도 사용자와 합의하여 최대 20일까지 일을 할 수 있다.

자격 요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

먼저, 부부나 파트너 관계인 두 사람이 육아휴직을 동시에 사용하려 할 때나, 출산 여성의 배우자나 파트너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려 할 때의 자격 요건에 ‘26주 이상 근속’과 ‘주당 최소 118파운드의 소득’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출산 여성의 육아휴직 지원 조건에는 근속 기간 제한이 없으며 소득 조건도 훨씬 낮고 유연하다. 이는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유리하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는 뜻으로, 여전히 여성을 주 양육자로 설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복잡성이다. 영국의 공인인력개발연구소(Chartered Institute of Personnel and Development)가 소속 인사담당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2017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공동 부모휴가 제도의 절차 및 자격 요건을 “복잡함” 또는 “매우 복잡함”이라고 평가했으며, 그중 몇 명은 이러한 이유로 소속 기관에서 이 제도를 장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Chartered Institute of Personnel and Development, 2017).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문제점은 자영업자, 파견 근로자(agency workers), 호출형 근로계약자(zero hours contracts)와 기타 저임금 근로자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노동조합회의(Trades Union Congress)는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며 근로 형태나 임금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남성에게 육아휴직을 허용한다면 50만여 명의 남성이 공동 부모휴가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Trades Union Congress, 2019).

또한 자격 조건을 만족시키더라도 2019년을 기준으로 주당 148.68파운드(약 21만 원) 또는 근로소득의 90% 중에서 더 낮은 수당을 받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남성의 육아 참여를 활성화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7년과 2018년을 기준으로 약 9200명(사용률 1%)만이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사용하고 급여를 받아 정부가 초기에 예측한 사용률 2~8% 수준에 못 미쳤다. 이는 부부간의 성별 임금 격차와 깊은 연관이 있다. 2013년을 기준으로 영국 근로 가정의 여성 중 22%만이 가계소득의 반 이상을 벌어들였고, 약 48%의 근로 여성은 가계소득에 10~40% 정도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Cory & Sterling, 2015). 즉,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근로 가정 열 가구 중 여덟 가구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주요한 생계부양자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성 근로자가 가계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신의 소득을 포기하고 한 달에 100만 원이 되지 않는 육아휴직 수당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한편, 버밍엄대학교의 연구진이 2015년 4월 이후, 즉, 공동 부모휴가 제도가 시행되고 난 후 태어난 아이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70여 건의 인터뷰를 했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활성화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Birkett & Forbes, 2018). 예를 들어, 인터뷰의 모든 참가자가 어머니, 아버지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는데, 좋은 어머니로서의 모성 정체성이 아이의 곁을 지키는 것과 관련 있다는 응답과, 바람직한 아버지상(像)은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여성을 돌봄제공자로,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보는 전통적인 시각은 직장에서도 지배적이었다. 남성 근로자는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신청한다고 회사에 알렸을 때 회사에서 이를 예기치 못한 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몇몇은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영유아의 경우 어머니가 돌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며, 공동 부모휴가 제도 도입 자체는 전통적 성 고정관념을 바꾸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동 부모휴가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되자 영국 정부는 정책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검토 대상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남성 근로자가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신청하고 실제로 사용하는지, 신청 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인지, 사업장별로 승인율이 다른지 등이 포함되었다(Women and Equalities Committee, 2018). 이에 대해 영국 하원의 여성 및 성평등 위원회(Women and Equalities Committee)는 공식 보고서를 통해 제도 검토 시에 정부가 공동 부모휴가 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12주간의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 도입을 반드시 고려할 것, 소득대체율의 상한선을 높일 것, 자영업자나 파견 근로자와 같이 현재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는 남성의 돌봄권을 재고할 것 등을 권고했다(Women and Equalities Committee,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가 최근 별다른 제도 수정 없이 공동 부모휴가 제도 홍보를 위한 캠페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150만 파운드(약 22억 원)의 예산을 투자한 것을 보면, 위원회가 권고한 성평등적인 육아휴직정책이 단기간에 도입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4. 나가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국은 복지국가의 모국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관련해서는 오랜 기간 비개입주의적 접근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아동 발달 및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 등 다양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 개입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2014년에 도입된 공동 부모휴가 제도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 부모휴가 제도의 혜택이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엄격한 자격 기준으로 인해 일부에게만 제한적이라는 점, 별다른 경제적 유인 없이 육아 책임 분담 문제를 부부간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긴다는 점, 여성이 여전히 제1의 양육자이자 주 양육자라는 가정에 따라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는 점은 영국의 최근 육아휴직 제도 변화가 기존의 경로 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공동 부모휴가 제도가 도입 4년 차인 2018년에 단 1%의 사용률을 기록한 사실은 육아 참여에 대한 자율적 선택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남녀 간 가사 업무의 불평등한 분담과 역학 관계를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정부가 앞으로도 기존의 최소개입주의 및 모성주의 지향성을 유지한다면, 여성을 주 양육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뜨림과 동시에 남녀의 동등한 유급·무급 노동 참여를 유도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성 분화적 노동이 문화적으로 강하게 지속되어 왔고, 산아제한정책을 제외하고는 가족에 대해 최소개입주의적 접근 방식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출산율 증가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활성화를 위해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활발하게 논의 및 도입하고 있다. 특히 2014년 10월부터 도입된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가 대표적이다.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두 번째 육아휴직자의 휴직 급여를 일정 기간 동안 상향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도입 초기에는 두 번째 육아휴직자에게 첫 1개월 동안 150만 원 또는 통상임금 100% 중에서 더 낮은 금액을 지급했으나 이를 점차 확대하여 현재는 두 번째 육아휴직자에게 첫 3개월 동안 250만 원 또는 통상임금 100% 중에서 더 낮은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이처럼 남성 육아휴직 사용의 경제적 유인이 상당히 확대되고 있음에도 직장 내 조직 문화의 경직성으로 인해 300인 미만 작업장의 남성 근로자들은 여전히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용노동부, 2019). 이는 영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녀 양육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고착화된 성별 분업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사업장 규모나 직종 및 산업, 근무 형태에 상관없이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눈치를 보거나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육아휴직 신청 거부 및 관련 불이익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양도 불가능하고 소득대체율이 높은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하여 더욱 성평등하게 자녀 양육의 책임을 분담해 나가야 할 것이다.

Notes

1)

공장 근로 여성의 경우 4주이다.

2)

공동 부모휴가 제도가 신설됨에 따라 2015년 4월 5일부터 기존의 추가 부성휴가는 폐지되었다.

3)

공식적으로는 무급이나 고용주가 단체협약에 따라 지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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